[쿠키 지구촌]
25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어떤 인물로 기억될까. 그는 1980∼90년대 '팝의 황제'로 세계 대중음악계를 호령해 온 동시에 잦은 아동 성추문 스캔들과 과도한 성형수술 등으로 비난받는 등 영광과 은둔의 삶을 동시에 살아왔다.
지금까지 13개 넘버원 싱글, 7억5000만장의 앨범 판매고, 13개 그래미상 수상 등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잭슨은 어릴 때부터 음악 신동이었다. 1958년 미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난 잭슨은 형제들로 구성된 '잭슨 파이브' 리드 싱어로 데뷔했다.
79년 팝의 귀재로 불리는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만나 발표한 첫 솔로 앨범 '오프 더 월'은 1000만장이 판매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82년 '스릴러' 앨범은 1억400만장이 팔려나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선풍적 인기를 끈 '문 워크(moon walk)'춤을 선사하며 부른 '빌리 진'과 '비트 잇'은 록음악과 소울 음악을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춤,노래, 연주, 작사·작곡에 이르기까지 세계 팝 음악의 흐름을 바꿔놓은 그의 천재성은 미국 사회에서는 최소한 음악을 통해 백인과 흑인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상은 곧 내리막길을 예고했다. 그는 87년 '배드'를 발표했지만 스릴러의 선풍에 미치지 못하자 슬럼프에 빠졌다. 슬럼프는 이상행동으로 이어졌다. 340만평이나 되는 캘리포니아의 호화주택 네버랜드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또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소아편애증'에 걸렸다는 소문에 시달리던 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 결혼했지만 2년도 안돼 파경을 맞았다. 2005년 14세 소년 성추행 혐의와 잦은 성형수술 부작용 등으로 이후 타블로이드 신문들에 수많은 가십거리를 제공했다.
팝음악 전문가들은 마이클 잭슨이 최고의 정상에서 무너진 이유로 90년대 힙합 시대가 도래하자 '인빈서블'을 발표해 극복하려 했지만 그의 음악적 창의성이 한계에 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잭슨은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7월13일부터 시작될 50차례 공연 계획을 발표했었다. 2005년 성추문 사건 이후 은둔에 들어갔던 그가 대중 앞에 몇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또 그는 사망 직전까지 내달 열릴 런던 재기 콘서트 준비에 열중했지만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재기의 꿈도 영구히 묻히게 됐다.
한편 사망 소식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팬들의 애도 글이 이어지고 있다. 시신이 안치된 캘리포니아주립대 의료센터 주변은 극성팬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미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한 채 사망 관련 소식을 시시각각 전했다. 그를 만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의 영웅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슬픈 소식"이라면서도 "언론들이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동훈 기자 dhlee@kim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