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의 병사가 되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의 병사가 되다

기사승인 2009-07-16 17:19:01

[쿠키 문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 설치에 이은 장마 때문에 50일 가량 파행을 빚은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지난 15일 재개됐다. 1996년부터 월요일과 비 또는 눈 오는 날을 제외하고 하루 3차례(오전 11시, 오후 2시·3시30분) 열린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비 갠 뒤 맑은 날씨를 보인 16일 오전 11시, 왕궁수문장 교대식을 체험했다. 준비를 위해 9시40분쯤 덕수궁 옆 서울시청별관의 행사단 대기실에 도착했다. 행사를 이끄는 예문관의 윤상기 연출자는 80명의 출연진 가운데 기자에게 승정원주서를 맡겼다. 왕명의 출납을 맡은 승정원 관리(정7품)로 교대식의 감독관 역할이다.

공모를 통해 뽑는 수문장과 군사들의 신체 조건은 키 175㎝ 이상. 대부분 30대 이하로 시력이 나쁜 대원은 렌즈를 끼어야 한다. 172㎝에 안경까지 쓴 40대 후반의 기자에게는 문관인 승정원주서가 적합하다고 연출자가 권했다. 10시쯤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은 후 연습에 들어갔다.

약시함(궁중열쇠 보관함)을 인계하고 교대의식을 감독하는 내관인 액정서사약(종6품) 역의 송하권(42)씨가 연습을 도왔다. 왕궁수문으로 입장할 때의 걸음걸이, 수문장이 암호를 확인할 때 대응하는 방법, 약시함을 인수인계하는 순서 등 40분 가량 수차례 연습을 반복했다.

드디어 11시 정각. 수문장(종6품)의 인솔 아래 참하(종9품)-수문군(기수 6명·군사 8명)-승정원주서-액정서사약-취라척(11명)의 순서로 수문까지 300m 가량 행진했다. 취타연주대인 취라척의 북소리에 맞춰 오른발을 내딛는 행진이 교련시간과 군대시절 왼발에 구호를 맞춰온 습관 때문인지 어색하기만 했다. 수문에 도착하는 순간 관람객들이 환호를 지르며 몰려들어 다리가 떨렸다.

궁을 지키던 수문장과 교대를 위해 도착한 수문장이 군호(암호)를 확인하고, 약시함을 수문군의 참하가 교대군의 참하에게 인계하는 과정을 감찰하는 기자의 이마와 등에는 땀으로 가득했다. 엄고수의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수문군과 교대군이 마주 서서 교대를 하는 것으로 식은 끝이 났다. 여기까지 8분 정도 걸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관람객을 위한 사진촬영 시간이 주어진 뒤 약시함 인계과정부터 교대식이 다시 진행됐다. 한 번 해봤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한결 여유가 있었다. 즐거워하는 관람객들의 표정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오전 9시부터 연습에 들어가 오후 5시까지 3차례 교대식을 치르는 대원들은 대학생, 연극배우, 대리운전사 등 다양하다. 월급은 100만원 안팎. 1년째 수문장을 맡고 있는 이장희(30)씨는 밤이면 대학로 극단에서 활동한다. 그는 “땀 흘리며 준비한 행사가 외부 요인으로 무산될 때 허탈하다”면서 “관람객들이 사진촬영을 요청하고 물을 건네며 위로할 때는 우리 전통을 보여준다는 자부심에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수문장 교대식은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도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조선 초기 의식이고, 서울시가 주관하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은 조선 후기 의식으로 군사들의 의상과 깃발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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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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