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변주곡 시도해온 석철주 개인전

‘한국화’ 변주곡 시도해온 석철주 개인전

기사승인 2009-07-19 16:56:00

[쿠키 문화] 한국화가 석철주(59·추계예술대 교수)씨만큼 전통을 이어가며 변화를 줄기차게 시도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1980년대 ‘탈춤’을 시작으로 90년대 ‘생활일기-옹기’를 거쳐 2000년대에는 ‘생활일기-식물이미지’ 연작을 발표했다. 전통 산수화만 고집하지 않고, 화선지 대신 캔버스를 쓰기도 하고 먹과 더불어 아크릴 물감으로도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제자로 한국화단을 이끈 청전 이상범(1897∼1972)에게서 나왔다. “어릴 적 인왕산 자락에 이웃해서 살았어요. 목수였던 아버님은 그집 구석구석을 다 손봐주셨지요. 야구를 하던 제가 교통사고로 그만 둔 16세 때, 청전이 우리집에 오셔서 난초그림을 그려주셨는데 그게 저의 미술입문이었죠.”

며칠 뒤 채본이 시커멓게 되도록 연습한 그림을 들고 청전의 집을 찾아갔고, 청전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5년간 그를 문하에 두고 가르쳤다. “선생님께서는 늘 ‘비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서야 그 뜻을 깨닫게 됐어요.” 보이는 것을 다 그리려고 애쓰지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은 굳이 형상을 나타내지도 않고 색채를 드러내지도 않는 제자의 그림에 닿았다.

캔버스 위에 바탕색을 칠하고 흰색을 다시 칠한다. 물감이 마르기 전 맹물에 적신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덧입힌 색깔이 지워지고 바탕색이 드러난다. 그 위에 마른 붓으로 다시 여러 번 붓질을 하고 나면 원래 바탕색이 희미하게 드러나면서 뿌연 안개나 비 내리는 풍경 같은 ‘석철주표’ 산수화가 완성된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북한산을 지나며 보고 느낀 것을 화폭에 옮긴 작품으로 서울 소격동 학고재(02-720-1524)에서 8월20일까지(1∼10일은 휴관) 개인전을 연다. 한옥의 본관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재해석한 ‘신몽유도원도’,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강희언의 ‘인왕산도’ 등 산수화를 분홍색과 푸른색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걸었다.

콘크리트 건물의 신관에는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풀을 긁어내기 기법으로 그려낸 ‘자연의 기억’ 연작을 선보인다. 달항아리 모양의 나무판에 들풀을 그린 작품과 도자기 모양에 산수를 배치한 ‘청화백자’도 함께 내놓았다. 각각의 공간에 어울리게 대작 위주로 구성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삭힌 장맛 같은 그림,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그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는 그의 작품은 옛것을 지키고 새것을 익히는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통한다. 이는 김상철 미술평론가의 말대로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 중 9편을 떠올리게 한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니 고인을 못 뵈도 예던(가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찌할꼬.”

사실 소재와 기법은 다르지만 그의 달항아리는 강익중의 작품이 연상되고 전통 산수화를 재해석한 그림은 이이남의 영상이 오버랩된다. 이에 대한 석철주의 설명. “누가 먼저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옷에 맞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것이 작가의 운명. 돌아보니 평균 5년에 한 번씩 변화한 것 같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하고 끊임없이 나를 찾아갈 것이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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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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