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일)
[교육,희망을말하다―학습부진] 공부가 두려운 아이들… 부모는 사정 몰라

[교육,희망을말하다―학습부진] 공부가 두려운 아이들… 부모는 사정 몰라

기사승인 2009-07-26 18:02:00

[쿠키 사회] 지난 5월 서울의 ○○중학교 2층 복도. 중간고사를 막 끝낸 홀가분함에 왁자했던 여중생들은 순간 멈칫했다. “들었어?” 분명 또래의 비명이었다. 학생들은 소리가 난 쪽으로 몰려들었다. 시선들은 건물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 않는 아이는 2학년 수빈이었다. “갑자기 뛰어내렸다”는 목격담도 들렸다. 구급차 사이렌이 멀어진 후에도 학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빈(가명·14)이의 꿈은 과학고 진학이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다음을 생각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아빠와 학원 일정까지 꼼꼼히 챙겨주는 엄마 슬하에서 공부도 곧잘 했다. 학원에서도 늘 최상위권이었다.

과학고 지망생이 자해, 투신

자신감에 차 있던 수빈이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학년 2학기 무렵이다. 전에도 쉬운 문제를 틀리거나 성적이 예상만큼 나오지 않아 끼니를 거르기도 했지만 볼펜으로 손목에 상처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딸을 나무랐다. “더 힘든 환경에서 자란 엄마도 시험 보고 졸업하고 다 했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

그 후 수빈이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말수가 줄어들었다. 올들어 중간고사 직후 학교에서 몸을 던지기까지 아무도 수빈이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수빈이는 2주 만에 퇴원했다.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계단에서 뛰어내린 것 치고는 가벼운 타박상이었다. 학교는 신경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두 달간의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던 수빈이는 “과학고에 못 간다는 생각이 제일 무서웠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반장이 성적 떨어지자 도벽증에 시달려

전남의 한 고교 1학년 신영이(가명·현재 18)는 반장이었다. 부모 대다수가 농사를 짓거나 뱃일을 하는 급우들 사이에서 신영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도시 직업’에 속하는 건축 일을 하는 아버지와 또래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다니는 세 살 터울 언니를 둔 덕분이었다. “그런 아빠, 그런 언니가 있어서 좋겠다”라는 친구들의 칭찬에 우쭐했지만 내심 괴로웠다. 언니와 달리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였다. 신영이가 다니는 고교는 일반 인문계에 탈락한 학생들이 차선으로 택하는 일종의 2지망 학교다. 인문계와 전문계 과정이 함께 있지만 신영이는 거기서도 전문계였다.

개학 직후부터 신영이 반은 잇단 도난사건으로 술렁였다. “나는 참고서가 없어졌어.” “너도? 난 MP3인데.” 담임 교사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한 달여가 지나자 목격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담임은 반장을 조용히 불렀다. “네가 없어진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을 본 애들이 있는데 사실이니?” 신영이는 말없이 고개만 떨궜다.

담임은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반장 자격을 박탈하고 전학을 권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교장 수녀는 고심하다 “개인 면담부터 해야겠다”며 결정을 미뤘다. “감기도 콧물감기, 목감기가 다르듯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신영이 입에선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성적이 떨어져 언니와 비교되기 시작하자 집에 무언가를 요구할 자신이 없어져 친구들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장 수녀는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낄 경우 관심을 받기 위해 갑자기 병을 앓는 학생도 있다”며 “충동조절이 안된 것이라 판단해 심리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수민이는 치료 후 원하던 인문계열로 옮겼고, 현재 방송 일을 꿈꾸는 고3 수험생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몰라

진태원 메티스 신경정신과 원장은 “학습 스트레스가 과도할 경우 도벽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너무 없어도 성취욕구가 사라져 문제”라며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과 과잉행동장애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학습부진 장애는 한 반에 20∼30%꼴로 나타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2005년 광역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초·중·고 19개교, 146학급 학생 2672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정신건강 역학조사에서도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전체의 7.37%였지만 ‘자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부모 비율은 0.86%에 그쳤다. 학교와 공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숨기는 자녀를 부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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