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완고하다. 겉모습도 그렇고 실제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 교토의 가쓰라 고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왔다. 그의 감독론은 '싸워야 하는 사람'이다.
김 감독을 만나기 위해 26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을 찾았다. 27일까지 올스타전 휴식기간이었지만 문학야구장 안에는 이만수 수석코치 등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김광현, 나주환, 박재상 등 전날 광주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출전했던 선수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4시45분쯤 워밍업을 시작으로 야간 훈련이 시작됐다. SK는 8개 프로야구 팀 가운데 가장 '빡센' 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감독은 당초 약속시간보다 50분가량 늦은 5시20분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교보문고에서 열린 자서전 '야신(野神)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 출간 기념 사인회에 몰려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느라 늦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사인이라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승부에 집중한 탓에 때론 선수들이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것조차 막았던 그가 사인을 하느라 훈련시간에 늦은 것이다.
어떻게 자서전을 냈느냐고 물어보니 출판사에서 제의가 와서 냈단다. 자서전에는 그가 감독으로 일했던 팀에서 겪었던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다소 민감한 내용이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물었더니 얘기를 더 꺼낸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일할 때 그는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이 된 이후 40년간 감독으로 일하면서 뜻대로 하지 못했던 유일한 팀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구단과 선수가 밀착하고 선수와 대구 지역의 소위 유지라는 이들이 밀착돼 있으면서 선수로 하여금 팀과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도록 했다"며 "감독과 코치, 선수의 목적의식 자체가 전혀 달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독설가다. 김 감독 스스로도 "내가 문제아고 골치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충돌이 생기고 비난받을 줄 알면서도 해야 할 얘기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한테 손해라서, 손해볼 것 같아서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앞뒤를 재지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해야 한다. 그는 의사들 앞에서도 이렇게 강연했다. "일할 때는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생각을 안한다. 일할 때 중요한 것은 일일 뿐 사느냐 죽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도 WBC 감독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내가 맡지 않아서 비난받았지만, 나는 비난받을 줄 알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책에나 쓸 얘기라고 했다.
김 감독은 42년생으로 이제 곧 칠순이다. 매일매일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 살아야 하는 감독으로선 쉽지 않은 나이다. 최근 들어선 조금씩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이 먹으면서 타성에 젖고 투쟁심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싸우려 하는 대신 무난하게 가려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그만둘 때가 됐나 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평생을 투쟁 속에서 살아왔다. 실력을 쌓기 위해 뼈를 깎는 훈련을 했고, 왜곡된 인식과도 평생을 싸워왔다. 결코 타협없이 현실과 싸워온 그였지만 재일교포에 대한 시선에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쪽발이라고 날계란을 무수히 맞아 봤고 신문기사로 얻어터지기도 했다"며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무조건 나쁜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라고 털어놨다.
하반기 전력 구상을 물었다. 그는 "부상자 한두 명 돌아온다고 팀 전력이 급상승할 만큼 야구가 간단한 게 아니다"라며 "나의 고민은 오직 우리 팀 스스로가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는, 또 다른 싸움을 기다리고 있는 완고한 승부사였다. 인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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