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 분위기=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미 여기자를 풀어준 데 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초청해 억류됐던 유성진씨를 석방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타협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와 유사하고 현 회장을 대남 메신저로 이용했다. 현대그룹과의 5개 합의 사항은 우리 정부 당국과 협의가 필수적이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우리 정부와 대화하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남북간 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견고한 한·미 동맹 관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으로 제재에 가로막힌 북한이 미 여기자 석방을 기점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 등 미 언론은 북한과 현대그룹의 합의에 대해 “중단됐던 남북교류와 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이 닫혔던 국경을 다시 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남북관계 주도권=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북 5대 개발프로젝트 등 ‘한반도 새 평화구상’을 제시한 다음날 현 회장과 면담을 가졌다. 북한의 제안이 이 대통령의 평화구상에 대한 호응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측 제안에 북측이 호응한 것이라면 향후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당국간 공감대를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북관계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으로 강조하고, 대남 압박 차원에서 5개항을 제시한 것일 수도 있다. 북측이 공동보도문에 언급한 10·4선언의 이행을 강요할 수도 있다. 북한이 대북사업 좌초로 고사 위기에 놓인 현대측에 5개항을 제시함으로써 남한 정부를 압박하는 ‘통민봉관’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상반기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통한 위기 국면 조성으로 대내결속을 도모했다면 하반기는 주도권을 확보하는 대외 전략을 통해 주민을 결속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엔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줄어든 달러 박스를 채우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조윤영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대북제재로 심각한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북한이 남한을 통해 이를 만회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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