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계획 철회는 지역안보 전략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백악관 회견에서 폴란드·체코 MD 구축 백지화 방침을 밝히면서 유럽을 향한 이란 등의 위협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방어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폴란드·체코 미사일 방어 기지 설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이들 국가를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주목적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확장함으로써 사실상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데 있었다. 오바마의 백지화 계획은 부시 전 행정부의 이런 전략을 완전히 뒤집으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용감한 결정"이라며 "이런 옳고 용감한 결정이 소련 시대 만들어진 통상법 폐기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다른 문제들에서도 내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의 파장은 러시아와의 화해 외교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관측된다.
오바마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꺼리는 미사일 부분을 해소시켜 주고, 그 대신 미국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란의 핵 문제 압박에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려는 '윈윈전략'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러시아와의 전략무기 감축 협정을 연내 마무리함으로써 양국 핵무기 감축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도 있다. 오바마 정부에는 미사일보다 핵 문제 해결이 시급한 사안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이 이란뿐 아니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주목을 끈다. 이번 동유럽 MD 계획 철회가 북한을 겨냥한 태평양 지역 MD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문제와 관련해선 이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위협은 시급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키로 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정학적으로 미국 본토와 유럽 국가 보호보다는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 방어에 역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에 공동 미사일 방어 계획 구축에 협력하자고 제안한 것은 중동 지역 문제 해결에 러시아를 끌어들이겠다는 계산도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우산 아래 국가 안보를 보장 받으려던 동유럽 국가들은 당혹감을 표출하고 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나토에 참여하면서 친미노선을 추구해 오던 차에 MD 기지 철회로 미국이 러시아에 맞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
미렉 토폴라넥 전 체코 총리는 "20여년간 우리가 유럽에 편입하려 했던 노력이 중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나쁜 소식"이라고 비난했다. 알렉산드로 스치글로 폴란드 전 국방장관도 "미국이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러시아가 동유럽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화당 등 미국 내 보수파들도 미국의 동맹국들을 소외시키는 조치이자 미국 대륙의 방위를 포기하는 정책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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