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돌출 발언과 행동이 엄숙한 유엔 총회장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23일(현지시간) 만 37년 집권기간 중 처음으로 유엔 총회에 참석한 카다피는 자신에게 할당된 연설시간 15분을 훌쩍 넘겨 무려 96분 동안 연단을 장악한 채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카다피는 길고 품이 넓은 갈색 리비아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해 '왕중의 왕'으로 소개받고 느릿느릿 연단에 올라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설 직후였다. 그는 프롬프터는 보지 않고, 손으로 쓴 메모지를 가끔 보면서 즉석 연설을 했다. 그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며 "기쁘고 자랑스럽다. 오바마는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이며 그가 물러나게 되면 우리가 뒤로 후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가 영구히 미국의 지도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치켜세웠다.총회장에는 폭소와 함께 산발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내 분위기는 반전됐다. 카다피는 단상에 놓여 있던 유엔헌장을 찢어버리며 "1945년 유엔 창설 이래 약 65개 전쟁이 있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고 비난했다. 이어 "안보리 이사회는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서방세계를 향해 7조7700억달러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카다피는 신종 플루가 군사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신종 생물 무기가 아니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배후는 누구인가 등 다소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카다피가 속사포 같은 아랍어로 장시간 연설하는 동안 동시통역사가 기진맥진해 교체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연설은 각국 대표 절반 이상이 자리를 비운 뒤에냐 끝났지만 카다피는 곧바로 퇴장하지 않고 총회 의장석으로 올라서 자신이 비난했던 유엔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의 연설은 정확히 1시간 36분이었지만, 1960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세웠던 4시간30분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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