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예상을 빗나가는 묘미 두 가지
영화 <부산>을 보니 두 가지 사실이 예상을 빗나간다. “너무 세다”는 관람 평이 많았지만 실제로 잔인한 장면 자체는 프레임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카메라로 줌인해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되고,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니 여기저기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신음과 작은 비명들이 새나온다. 속된 말로 ‘눈 버리지 않고’ 장르적 쾌감을 즐길 만하다.
또 하나의 ‘예상 밖’은 배우 고창석이 주연이라는 점. 물론 김영호, 유승호와 함께 주연급으로 소개됐지만, 이토록 큰 배역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영화는 태석(김영호 분)의 거친 주먹을 따라 투박한 피범벅 액션의 길을 가기보다 강수(고창석 분)의 양아치 인생을 따라 애잔한 범죄 드라마로서의 길을 택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이미 “너무 잔인하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는 걸 상기하면, 김영호의 액션은 ‘짧고 굵은’ 에너지를 발산했고 다채로운 변주의 고창석표 부정(父情) 연기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주연? 나도 예상 못했다”
드라마 <드림> 촬영으로 바쁜 배우 고창석을 졸라 서울 정동길 초입에서 만났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물었다. 포스터나 엔딩 스크롤에는 제일 먼저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명실상부한 제1 주연이다. 촬영 당시, 혹은 그 뒤라도 ‘강수의 드라마’로 편집될 것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어요. 저도 처음 영화보고 적잖이 놀랐고, 그래서 VIP 시사 때는 무대인사만 하고 동료 배우들 곁에 앉아 영화를 볼 수가 없었어요. 너무 부끄러워서요, 제가 벌써 주연을 할 깜냥이 되나 싶네요.”
고창석의 겸손은 계속 됐다. “저는 그저 김영호 선배, 유승호 군을 믿고 출연했어요. 제작사에서도 아마 지명도 있는 두 배우가 있었기에 저를 캐스팅하는 부담이 덜했을 겁니다. 저도 두 분이 맡은 캐릭터 중간에서 둘을 연결하는 ‘바느질’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박지원 감독이 이런 얘기는 하시더라고요. <부산>은 태석과 강수라는 두 사내의 서로 다른 인생길, 그것이 빚어내는 충돌 자체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네요.”
고창석이 밝히는 두 가지 부끄러움
거죽만 사람이지 마치 짐승처럼,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글자 그대로 종철(유승호 분)을 학대하고 구타하는 인간망종으로 시작해 친 아들도 아닌 종철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아비로의 안착은 보기에 좋았다. 부끄러워할 <부산>은 아니라고 하자 두 가지 이유를 댔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며 태석을 입체적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영화에 호쾌한 액션을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선배 김영호의 촬영분이 많이 드러내진 것에 대한 죄송함”이 그를 ‘송구스럽게’ 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영화가 강수의 드라마로 가는 것이 옳았는지, 태석의 액션으로 가는 게 더욱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선택이었던 것은 아닐까”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첫 번째 부끄러움은 선배 배우 김영호가 해소시켜줬다. “형님도 처음 영화 보시고는 표정이 굳어지시더라고요. 저라도 화가 많이 났을 거예요. 그런데 역시 다르신 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며 감독의 선택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저보다 무대 인사를 더욱 많이 서시며 관객과의 소통에 나서고 계세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고 주연의 몫을 제대로 보여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의구심에 대한 것은 관객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조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참견과 일반시사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는 얘기를 전했다. 시사 후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 중에 “왜, 고창석이 주연이야?”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저 배우 누구지? 연기 장난 아니다” “<영화는 영화다> 봉 감독이잖아” “아 맞다, 덕분에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었네”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생생한 강수 제조법 “아직은 생긴 대로 연기”
시사 관객들의 이러한 만족감의 바탕은 생생함 넘치는 ‘강수’이다. 종철을 패는 강수가 나오면 욕을 하고, 사채업자들에게 맞는 강수를 보면 혀를 차고, 태석에게 무지막지하게 맞는 강수를 보면 안쓰러워한다. 그리고 마지막 따뜻한 헌신에서는 절로 눈물이 솟는다. 영화 속 많은 아버지가 존재해 왔지만 강수는 참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다. 생생 캐릭터의 제조법을 물었다.
“아직은 제가 영화 쪽 경험도 부족하고 해서 감히 제조법이라고 말씀드릴 것은 없어요. 저를 묻혀내서, 솔직한 제 모습대로 연기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영화 찍는 동안은 그 캐릭터에 빠져 살고요. 그러다 보니 <영화는 영화다> 때도 스태프 분이 이미 봉 감독 의상을 다 준비해 놨는데, 장훈 감독께서 ‘지금 입고 오신 그 옷이랑 모자 좋네요, 그대로 가죠’하기가 일쑤일 만큼 봉 감독스러운 옷에 손이 가고 걸음걸이나 말투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얘기는 자연스레 <부산>으로 옮아갔다. “이번에도 그랬어요, 그냥 주욱 부산에서 지내면서 열심히 패고 맞고 울고 그랬어요. 이렇게 많이 울어보기는 태어나 처음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연기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닙니다. 관객 분들이 양아치 강수에서 절절한 부정을 가진 사람으로 넘어간 부분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해주셔야 안심이 될 것 같아요. 그 부분을 가장 고민했었거든요. 아직은 저 생긴 대로 연기하지만, 제가 영화 쪽에서 연기에 일가를 이룬다면 저도 매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전혀 저와 다른 캐릭터를 표현해내고 싶습니다. 그럴 기회가 제가 주어지면 좋겠고요.”
가장 행복했던 부산의 ‘하루’
전기 톱날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들어오고, 그 촬영을 위해 팔다리 옷자락이 선반에 박힌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온종일을 보내야했던 영화 <부산>. 가장 기분 좋았던 하루를 물었다.
“‘징하게’ 맞고 이 작은 눈이 팅팅 붓게 울고 그랬지만 매일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영화의 일부분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끝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뻤던 때는 영호 형님이 촬영 끝난 뒤 ‘소주 한잔 하자’고 청하신 날이었습니다. 창고에서 강수가 두 주먹을 볼과 눈 옆에 대고 죽어라 맞던 날이었죠.”
“영호 형님이 평소 술을 안 드세요. 강하고 사내다운 외모와 달리 굉장히 사색적이고 섬세한 완벽주의 연기자시거든요. 술을 청하시니 웬일인가 했죠, 내가 뭐 잘못했나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형님이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촬영해 보니 너 괜찮다. 앞으로 더 좋게 되겠어, 맘에 든다’. 사실 말 안 해주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 대선배의 따뜻한 인정이 정말 감사했고 힘이 됐습니다. 그 뒤로 더욱 날개를 단 듯 신명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엄마와 <애자>? 아버지와 <부산>!
영화 <부산>의 개봉 2주차 성적은 주간 박스오피스 7위이다. 관객 수는 첫 주에 비해 3분의 2로 줄었다. 이대로 놓쳐버리기엔 아쉬운 영화다. 어머니와 <애자>를 봤다면, 아버지와 <부산>을 보며 ‘가을 타는 남자’의 마음을 달래드리는 게 어떨까. 우리의 아버지도 젊은 당신 못지않게 여전히 주먹 크고 가슴 뜨거운 ‘사내’들이니, 부산 사내들의 영화로 남자 대접을 해드리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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