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윤 폐지의 빛과 그림자…표절 논란만 있고 결과는 없다

공윤 폐지의 빛과 그림자…표절 논란만 있고 결과는 없다

기사승인 2010-02-08 14:34:01

[쿠키 연예] 지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 ‘시대유감’은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 사전심의에서 “가사가 너무 부정적이어서 대중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금지곡 판결을 받았다. 대다수 가수들이 금지곡을 앨범에서 제외하거나 수정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달랐다. ‘시대유감’을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앨범에 실어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렇게 사전심의 논쟁은 촉발됐다. 결국 이듬해 6월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및 노래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는 폐지된다.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 설립을 시작으로 한국공연윤리위원회와 공연윤리위원회까지 계속된 사전심의 제도가 사라진 것이다.

공윤은 사전심의 위헌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렸고 1999년 폐지됐다. 1997년 10월까지 공윤이 담당한 표절 심의도 영상물등급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없어졌다. 표절이 당사자간의 문제인 친고죄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현재 표절 판정은 오로지 법원을 통해서 이뤄진다. 원 저작권자가 표절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고소를 해야만 재판을 통해 결과가 나온다. 2006년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가 더더의 ‘이츠 유(It’s You)’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0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표절 문제로 국내 가수끼리 실제 법적 공방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용히 물밑으로 사후 합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곡을 표절했을 경우도 법적 공방과는 거리가 멀다. 해외 원 제작권자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표절 논란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고, 설령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우리나라 법체계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손해배상액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최근 들어 국내 유명 작곡가들이 표절 논란에 계속 휘말리는 것은 이 같은 현실과 무관치 않다. 법적이나 제도적으로 기준이 모호하고 안전장치가 미비하다보니 표절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더구나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후크(Hook·특정 가사와 리듬을 계속 반복하는 기법)송은 불과 2소절(8마디) 내외로 상업적인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후렴구 한두 소절로 얼마든지 거액의 저작권료를 벌어들일 수 있다.

공윤이 사라진 후 표절 심의는 완전히 민간의 자율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상태다. 대중이 인터넷을 통해 표절 의혹을 직접 제기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가수나 작곡가가 표절을 인정하거나 원 저작권자가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표절 여부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는다.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드래곤의 표절 논란도 아무런 결과 없이 상처만 남겼다.

2006년 이승기는 2집 앨범 수록곡 ‘가면’이 마룬파이브(Maroon 5)의 ‘디스 러브(This love)’와 표절 논란이 일어나자 샘플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앨범 재킷 어디에도 샘플링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무단 샘플링의 대표적인 사례다. 씨엔블루 측은 ‘외톨이야’의 표절 시비에 대해 “만약 표절하려 했다면 외국의 더 좋은 곡을 했을 것”이라는 상식 이하의 답변을 내놨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표절 논란이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1995년 룰라는 정규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가 표절 의혹을 받자 리더 이상민이 자살소동을 벌이고 해체 위기를 맞았다. 다음 해에는 김민종이 ‘귀천도애’가 표절했다고 인정하고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김민종은 곡을 직접 작곡하지 않았지만 대중 앞에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 숱한 가수들이 표절 논란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고 마음고생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표절 논란만 있고 결과가 없다. 국가기관이 사전 심의를 통해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것은 창작자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지금 가요계는 도를 넘고 있다. 민간 자율영역에서 표절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이 나올 시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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