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발견] 뮤지컬 ‘서편제’ 고루하다고? 즐기고 울어라

[Ki-Z 공연 발견] 뮤지컬 ‘서편제’ 고루하다고? 즐기고 울어라

기사승인 2010-08-28 13:03:00

[쿠키 문화] 잘 만든 뮤지컬은 마지막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을 들썩이게 한다. 자신들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사람부터 이미 손은 박수 자세를 취한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를 무대에 옮긴 뮤지컬 ‘서편제’가 그렇다.

이 작품은 현재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공연되고 있다. ‘판소리 뮤지컬’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루하고 익숙하지 않은 판소리를 주제로 했다하니,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극적인 음악과 소리만을 접한 이들에게 판소리를 어느 역사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제작사도 판소리 뮤지컬이라 불리우는 것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뮤지컬 ‘서편제’는 우리네 판소리가 뮤지컬 무대에서 얼마나 잘 조화되어 보여질 수 있으며, 관객들의 심중 한(恨)까지도 끄집어내는 신통방통한 힘을 지녔는지 느끼게 한다.

스토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득음을 위해선 아내도 잃고, 스승도 잃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도 주저 않는 아버지 유봉, 아버지에 의해 눈까지 멀게 되지만 그 한을 가슴속에 품고 소리를 해 내는 송화, 그리고 송화를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다른 길을 택하는 동호. 세 사람의 인생이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모이기도 했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또 어울리기도 하다가, 마찰음을 내기도 한다.

‘판소리 뮤지컬’이라 하여 판소리로 진행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김범수의 ‘하루’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 이은미의 ‘애인있어요’ 등을 작곡한 윤일상이 참여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록발라드 풍의 노래들은 감성 깊고 풍부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판소리와 또다른 맛을 전달했다.

희한한 것이 이 지점이다. 판소리와 이런 록발라드 풍의 노래들이 서로 어울림을 시작한다. 이는 제작진의 고심에서도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무대 위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들이 무대 위에 쏟아내는 가슴 속 삭힌 한(恨)은 뮤지컬 배우로 혹은 소리를 하는 사람 모두 똑같이 예인(藝人)으로서의 삶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무대 또한 간결하면서도 이 처절한 삶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한지를 겹겹이 붙여 올린 8쪽의 막들은 병풍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하며, 혹은 영상과 어울려 지난 계절들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영상과 함께 둥글게 돌아가는 회전 무대는 소리꾼의 유랑을 험난함과 길에서 사는 인생의 쓸쓸함을 표현해준다.

이같은 소리의 어울림과 진한 무대 위 광경들을 지켜본 관객들의 가슴 속을 울리는 장면은 송화와 동호가 수십 년 만에 만나 둥글게 회전하는 무대 위에서 ‘심청가’를 부르는 모습이다. 눈이 먼 송화는 ‘심청가’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이를 안타깝게 쳐다봐야 하는 동호의 심정은 관객들과 같은 호흡을 하게 만들어버린다.

제작진이 고충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도에 대해 높은 평가를 줘도 아쉽지 않은 이런 뮤지컬 ‘서편제’가 아마도 관객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극중 송화 역을 맡으며 국악 선곡에도 참여한 이자람일 것이다. 이지나 연출이 읍소하다시피 출연 요청을 했다는 이자람의 양악과 국악을 넘나들며 ‘소리’를 보여주는 모습은 결국 관객들을 심금을 울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깊고 깊은 시간의 흐름과 풍성하고 공간을 꽉 채울만한 대극장용 소리의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중극장에서 펼쳐지며 갇힌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소리가 뻗질 못하고 돌고 있는 셈이다.

이자람 차지연 민은경이 송화를, 임태경 김태훈이 동호 역을 번갈아 맡으며, 아버지 유봉 역에는 서범석 JK김동욱 홍경수가 열연하는 뮤지컬 ‘서편제’는 오는 11월 7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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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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