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김태희는 ‘그랑프리’ 통해 ‘배우’가 될 수 있을까

[Ki-Z 사람] 김태희는 ‘그랑프리’ 통해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0-09-04 13:05:00

[쿠키 연예] “김태희는 CF부터 줄여야 한다. 배우가 CF 노출도가 높아지고 거기에 익숙해지면 긴 호흡의 영화는 못 따라간다. 배우로서 생명도 짧아질 수 밖에 없다”

배우 김태희와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한 배우의 지적이다. 사실 이는 김태희 뿐만 아니라, 고소영, 전지현 등 수많은 배우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김태희가 더 지적을 받는 이유는 고소영과 전지현은 영화 대표작품이 존재하지만, 김태희는 대표작은 고사하고, 대부분 평균작도 없는 참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소 기억하기 어려운 작품을 제외하고 따져보면 김태희가 출연한 작품은 두 편이다. 정우성과 호흡을 맞춘 <중천>(2006)과 설경구와 짝을 이룬 <싸움>(2007)이다. 이 두 작품은 수치상으로 봤을 때나, 당시 평단과 관객들의 평가로 봤을 때 ‘실패작’으로 분류된다. <중천>은 100억원의 제작비용과 CJ엔터테인먼트라는 막강한 투자배급사를 등에 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관객 150여 만명에서 그쳤다. 흥행배우 설경구와 호흡을 맞춘 <싸움>은 전국 관객 38만명이라는 대참패를 기록했다.

사실 두 영화의 흥행 실패를 김태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중천>은 CG만 앞세운 내러티브 약한 영화로 혹평을 받았으며, <싸움> 역시 ‘왜’를 설명할 수 없는 스토리가 관객들의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러나 실패를 김태희 탓으로 돌릴 수는 없어도, 김태희가 두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력에 대한 혹평은 피해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두 영화의 실패의 중심에 김태희가 있는 것이다. 영화가 아무리 낮은 수준의 스토리를 선보여도 그 안에서 역량을 펼치는 배우에게까지 비판이 이어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싸움>에서 김태희에 대한 혹평은 존재해도 상대 배우인 설경구에 대한 혹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경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으로 관객에게 기억되지만, 김태희에게는 스스로가 망친 작품으로 기억되는 셈이다.

정말 김태희는 연기를 못할까. 사실 김태희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녀가 가진 외적 요소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의 뛰어난 외모는 항상 김태희 연기의 한계를 규정지어 줬다. 도도한 이미지의 김태희가 <중천>이나 <싸움>에서 액션과 망가짐을 보여주어도 항상 그녀에게는 외적인 평가만 주를 이뤘다. “진흙탕 속에서도 김태희는 예뻤다”는 평가는 그녀가 가진 연기 영역의 폭이 극히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앞서 한 배우가 지적했듯이 CF 퀸으로서의 김태희는 긴 호흡의 영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미 잦은 CF로 소모되며 고착된 김태희의 이미지는 연기력 자체를 선보일 기회조차 쉽게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한동안 김태희에게는 ‘대표작이 하나도 없는 톱 여배우’라는 희한한 타이틀이 붙었다. 연기로서 대중들에게 자신을 보여야하는 여배우가 실제 관객들에게게 호평 받은 작품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톱’이라는 기준 없는 호칭을 달고 다닌 것이다. 이 때문에 “톱 여배우가 아닌 톱 CF배우가 아닌가”라는 말 역시 김태희에 대한 대중들의 단적인 평가다.

그런 김태희에게 드라마 ‘아이리스’는 스스로가 말했듯이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고공 시청률에 시청자들은 김태희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극찬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김태희가 배역을 잘 소화해냈다기보다는, 배역이 김태희에게 잘 맞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가 정보기관의 도도하면서도 이지적인, 외적 요소가 완벽한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김태희가 그동안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당시 김태희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이미지는 CF를 비롯한 ‘김태희는 00이다’라는 선입견과 맞아떨어졌다. 1회에서 김태희가 이병헌과 정준호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그러했고, 이병헌과의 러브라인이 그려지는 모습도 대중들이 김태희에게 바라는 모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펼쳐진 김태희의 액션은 대중들에게 서비스 연기였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김태희의 이번 영화 <그랑프리>는 김태희에게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아이리스’를 통해 얻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이어나가면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냐는 점이고, 둘째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대표작품을 만듦으로서 연기자로서의 폭을 넓힐 수 있냐는 것이다.

<그랑프리>는 그런 면에서 김태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준다. 연기파 배우 양동근과의 호흡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어떻게 보면 군 입대한 이준기보다는 양동근이 김태희에게는 더 적절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 김태희-이준기가 보여주는 선남선녀의 ‘기수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어필도가 극히 낮다. 양동근의 거칠지만 따뜻한 이미지가 도리어 김태희에게는 플러스 요인인 것이다.

또한가지는 스크린이 핏빛으로 물든 상황에서 따뜻한 이야기로 김태희 본연의 장점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등의 국내 영화는 물론 외화까지도 잔인한 장면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관객들이 어느 순간 따뜻한 영화를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그랑프리>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빛을 내려면 역시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김태희의 연기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모습이 컷에 의해 이러진 편집의 힘이 아닌, 배우 김태희의 힘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랑프리>가 흥행에 실패하거나, 혹은 실패했을지언정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또다시 혹평으로 물든다면 사실상 영화에서 배우 김태희의 존재감은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은 허언이 아니게 들릴 것이다. 설경구, 양동근의 존재조차도 밀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영화 속 그 어느 배우와의 호흡도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 영화 평론가는 “몇몇 작품만으로 김태희에 대한 평가는 이르다. 더 많은 작품을 접하고, 거기에 맞는 작품이 나온다면 그게 김태희의 대표작이 되고 또다른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아직 김태희는 3작품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김태희가 이미 이미지만으로 ‘톱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은 물론이고, 관객들이 김태희의 연기력 향상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극장가를 꾸준히 찾을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이 녹녹치 않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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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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