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영화人] 장진 감독의 고민은? “‘퀴즈왕’ 뜯어보는 영화 아닌데…”

[Ki-Z 영화人] 장진 감독의 고민은? “‘퀴즈왕’ 뜯어보는 영화 아닌데…”

기사승인 2010-09-18 13:00:00

"[쿠키 연예] 장진 감독은 외유내강 형이다. 호리호리한 외형만 놓고 보면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연악한 가지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스크린’이라는 토지에 뿌리를 내려 곧고 단단하다. 서른도 안 돼 달게 된 감독 명함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영화사 대표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하기 위해 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남들에게는 허허 웃으며 관대할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냉혹했다. 일이 생기면 토막잠을 자면서라도 끝까지 해내고 말았다.

지난 주말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장진(39) 감독은 16일 개봉한 <퀴즈왕> 영화 홍보에 올 크리스마스 시즌 관객을 찾아가는 <로맨틱 헤븐> 촬영까지 겹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친 후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돼 있었다. 공식 일정을 끝낸 뒤에는 <로맨틱 헤븐> 촬영장으로 직행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활력이 넘쳤다.

그런 그가 털어놓은 첫 번째 화두는 ‘관람 포인트’였다. “<퀴즈왕>은 세세하게 뜯어보는 심오한 영화가 아닌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며 즐기는 경쾌한 영화”라고 귀띔했다. “마음 맞는 스태프와 배우끼리 질펀하게 노는 것처럼 만든 영화가 개봉까지 하게 될 몰랐다”고 행복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연극의 한 장면처럼 말장난의 끝을 가보고 싶었어요. 요즘 영화들이 상업시장의 이해논리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거의 비슷비슷하게 만들어내잖아요. 저도 이런 분위기에 서서히 동화되는 것 같아서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래서 어느 날 저랑 10여 년 동안 손발을 맞춘 스태프를 불러 놓고 ‘간단한 거 하나 만들 생각인데 논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하자’ 독려하면서 시작한 작품이 <퀴즈왕>입니다.”

결과물을 보면 늘 아쉬움이 따르는 법. ‘완벽주의자’ 장진 감독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지 물어봤다. 소극장에서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관람하려고 만든 작품이라 완성도에 큰 공을 들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단다.

“시나리오 작업에 한 달, 촬영에 한 달 정도 걸렸는데요. 정말 쉬엄쉬엄 만들려고 했던 작품이에요. 즐기면서 만든 작품인데 분석하듯 뜯어서 봐주시니 약간 당황스럽기도 해요(웃음). 물론 작품에 대해 비평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번 작품은 코미디 물로서 편안하게 관람하면 되거든요. 왁자지껄 떠드는 느낌을 담느라 뚝뚝 끊어지는 맛이 있기도 하고요. 캐릭터나 이야기 흐름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제 작품의 결말에 대해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고요. 전 관객의 상상력을 넓혀주기 위해 느슨하게 끝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웃음).”

<퀴즈왕>은 제목 그대로 TV 퀴즈쇼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다. 4중 추돌 교통사고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까지도 풀지 못했다는 마지막 30번째 문제의 답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마지막 문제를 푸는 자에게는 133억 원이라는 막대한 상금이 돌아간다.

장 감독의 시나리오를 코믹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스타 배우 군단이 참여했다. ‘능청스러움의 대명사’ 김수로를 비롯해 장동건·고소영 주연의 <연풍연가>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한재석, 장진 감독이 집필을 맡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함께 한 정재영, 신하균 등이 출연했다. 장 감독이 대표로 있는 <필름있수다>의 소속배우 류승룡과 류덕환도 개성 있는 캐릭터로 힘을 보탰다.

“제가 그렸던 그림보다 배우들이 더 잘 연기해준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모든 배우들과의 작업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에서 (한)재석이에게 마음이 많이 갔어요. 재석이는 가진 재능이 뛰어난데 너무 움츠려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죠. 이번 작품을 통해 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진 감독도 <퀴즈왕>에서 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극중에서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강력계 형사 ‘마 반장’ 역을 소화했다. ‘마 반장’은 <박수칠 때 떠나라>와 <아들>을 통해 각별한 사이가 된 차승원에게 출연을 제안했던 역할이었다. 하지만 당시 <포화속으로> 진행으로 인해 수염을 깎을 수 없어 아쉽게도 무산됐다. 정재영에게도 러브 콜을 보냈으나, 작품 촬영 중이라 함께 할 수 없었다. 캐릭터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장 감독이 배우로 열연하게 된 것은 <아는 여자> 이후 6년 만이다. 첫 도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쉬웠을 것 같은데 장 감독은 “정말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연기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멋지고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죠. 그런데 전 제 작품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부족한 실력 탓도 있고, 암튼 여러모로 전문배우가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연기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 장진, 썩 나쁜 것 같지 않네요(웃음). 이번에는 수수하게 연기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겠네요.”

<퀴즈왕>이 추석 시즌에 스크린에서 경쟁하는 한국영화로는 원빈의 <아저씨>, 설경구의 <해결사>,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주연의 <시라노;연애 조작단> 등이 있다. 장 감독은 이들에 대해 10여 년 동안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교수로 활동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원)빈이 하고는 9년 전 <킬러들의 수다>로 만났는데 지금 보니까 정말 멋지게 성장해 준 것 같아요. 아직 <아저씨>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 반응도 좋고 호응도 꽤 높더라고요. (설)경구 형은 실력이 좋아서 꾸준히 잘 되어야 하는 배우이고요. (엄)태웅이는 백수 시절부터 안면을 익힌 친구라 잘 알죠. (이)민정이는 제 작품 <아는 여자>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고, (최)다니엘은 제 고등학교 후배고요. 따지고 보니 이렇게 저렇게 얽혔네요(웃음). 다들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차기작인 판타지 영화 <로맨틱 헤븐>은 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퀴즈왕>과 사뭇 다르단다. 김수로, 김지원, 김무열, 김동욱이 출연하는 <로맨틱 헤븐>은 죽어서 이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누구나 다 경험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낼 예정이다.

“<로맨틱 헤븐>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을 거예요.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잖아요. 어떤 결말을 얻을지 몰라 아등바등하면서 살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는 죽음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유독 판타지물에 대해 다루지 않는데 <로맨틱 헤븐>을 통해 그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다시 한 번 찾아오겠다며 미소를 보이고 떠난 장진 감독. 코미디와 판타지물, 그 사이의 격차를 ‘충무로 재주꾼’ 장진은 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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