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인셉션’보다 복잡하지만, 더 깊은 연극 만나봤어?

[Ki-Z 공연] ‘인셉션’보다 복잡하지만, 더 깊은 연극 만나봤어?

기사승인 2010-09-19 13:01:00

[쿠키 문화] 올해 최다관객을 모은 영화 <인셉션>도 이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인셉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꿈속에서 다른 장소에 있을 뿐, 각각의 인격은 모두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극중극’형식으로 3겹이나 칭칭 감겨, 등장인물들의 인격조차 바뀌는 연극 ‘연애희곡’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무대 위의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 수고(?)를 겪게 된다.

1단계는 현실이다. 창사특집 대작 집필을 맡은 인기 방송작가 ‘타니야마’ (이지하, 배해선)의 대본을 받아오라는, 방송국 드라마국장의 특명을 받고 신입PD ‘무카이’ (도이성, 전동석)가 그녀의 집에 방문한다. 그런데, 집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타니야마’와 그의 매니저 ‘테라다’ (김성기)의 다소 엉뚱한 태도에 신입PD는 어떻게 대처해할지 모른다. 그런데 대본을 한 줄도 쓰지 않은 ‘타니야마’가 ‘무카이’에게 엉뚱한 제안을 한다. 자신과 연애를 해야 대본을 완성할 수 있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본의 내용이 다시 무대에 펼쳐진다. 바로 2단계다. 드라마 내용은 스타 PD와 이제 겨우 드라마 대본 응모전에 출품한 주부가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매니저 ‘테라다’는 술에 취한 남편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순진한 주부 작가가 만드는 대본은 더욱 가관이다. 3단계의 무대에서는 다시 스타 작가가 신참 PD에게 대작을 위해 연애를 요구하고, 이 과정의 끝은 ‘사랑’으로 끝난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에는 무장강도 커플 ‘히토시’ (김재만, 김대원)와 ‘쿄코’ (송유현)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더 꼬여간다. 이들은 대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넣기를 요구하는데, 현실에서의 이 요구는 2단계와 3단계에 각각 반영되면서, 더욱 복잡한 구조를 양산한다.

세 이야기의 기본 구도는 같지만, 작가와 PD의 권력 관계가 뒤바뀌는 것은 물론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인격들이 변화된다. ‘무카이’는 ‘신참PD와 스타PD 사이를 오가면서, ’타니야마‘에 대한 감정 역시 뒤죽박죽 표출된다. ’테라다‘는 가학과 피학의 사이를 오가며, ’무카이‘와 ’타니야마‘의 감정을 오묘하게 만든다. 여기에 매니저 ’테라다‘는 막판 반전으로 연극의 ’막장‘을 완성시킨다.

연극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는 각각의 단계에서 보여주는 ‘타니야마’의 행동에서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의 해답을 찾게 된다. ‘일’과 ‘연애’ 그리고 ‘생활’ 중에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찾게 된다. 그리고 또하나는 거대 방송사에서 보여주는 TV드라마 본질의 허무함이다. 스타작가인 ‘타니야마’의 히트작들이 결국 설거지하면서 잊게되는 ‘거품 드라마’라는 극중 지적은 이와 연결된다.

물론 여기에 답을 찾기는 어렵다. 원작자인 코카미 쇼오지는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이가 납득할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코마미 쇼오지의 말대로 연극도 답을 제시하는 않는다. 그리고 그 안의 등장하는 TV드라마의 허무함
답 없는 현실의 삶에서 조그마한 활력소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에 쉽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어렵다.
연극을 보고난 후의 관객들의 반응은 여타 연극들보다도 훨씬 다양한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대’ 그리고 그 ‘무대’위에서 겹겹이 쌓인 ‘진짜 현실’의 모습들이 관객들의 경험과 융화 혹은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극 후반부에서 두 번째 단계의 내용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한 줄기로 엮여, 조금은 관객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일부 잘라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부연할 내용이 있다면,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3단계로 이뤄진 스토리에 대해 정신없음을 느끼는 것은 비단 관객들 뿐만은 아닌 듯 싶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인격의 인물을 연기하며, 다른 감정선을 유지해야하는 배우들의 작은 실수도 그래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 같다. 9월 15일 웃음 터진 배우들의 무대 위 모습은, 관객들에게 ‘실수’라기보다는 ‘선물’이었다. 오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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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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