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JYP ‘최초’ 래퍼 산이 “아이돌 만만하게 봤다”

[쿠키人터뷰] JYP ‘최초’ 래퍼 산이 “아이돌 만만하게 봤다”

기사승인 2010-10-08 07:29:00

"[쿠키 연예] 힙합계에 익살꾼이 등장했다. god, 원더걸스, 2PM, 2AM 등을 배출해낸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래퍼 ‘산이’(본명 정산·25)다.

박진영이 래퍼를 내놓은 것은 ‘산이’가 최초다. ‘미다스의 손’이자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박진영이 산이에게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일임하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대중 앞에 선보였다는 것은 산이가 갖고 있는 재능과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의미다. 데뷔 앨범 ‘에브리바디 레이디?’(Everybody ready?)는 박진영이 왜 그를 인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증거자료다.

산이의 랩은 해학적이면서도 신랄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유려한 플로우를 듣고 있노라면 금세 노래에 빠져든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가요계 병폐에 대해 오목조목 비판한 내용은 통쾌함도 선사한다. 이처럼 산이가 데뷔 앨범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진영의 믿음 덕분이다. 박진영은 산이의 목소리를 최대한 낼 수 있도록 대부분의 작업을 그에게 믿고 맡겼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 색깔을 한 번 내봐라’ 기회를 주셔서 제 입맛대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JYP 최초 래퍼’라는 타이틀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작업했어요.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제 랩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인정해주셨던 분들이 데뷔 앨범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실지 궁금합니다.”

산이의 실력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미 입증됐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힙합 사이트에 자신이 만든 랩을 공개해 유명세를 탔고, 2008년 버벌진트의 ‘누명’ 앨범 피처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상을 수상했으며, 다수 뮤지션들의 노래에 피처링하면서 수려한 랩 솜씨를 자랑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래퍼라고 칭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힙합에 빠져 살았고, 감각적 랩을 구사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다.

“중학교 시절 미국 애틀란타로 이민을 가서 가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선배를 참 좋아했어요. 제 또래와 마찬가지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와 춤을 듣고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고, ‘드렁큰 타이거’를 통해 힙합이라는 장르에 서서히 눈을 떠갔죠. 늘 랩을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미국 본토에서 익힌 힙합을 들고 나오면 국내시장에도 ‘힙합의 대중화’를 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접해본 현실의 벽은 예상외로 높았다. 특히 가요계 주류로 통하는 아이돌 그룹과의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가요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자신만만했어요. 제 음악이 갖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돌과 겨뤄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아이돌 그룹 만만하게 봤는데 막상 와서 해보니까 제 자신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특히 미국에서 유행하는 흑인 음악을 그대로 가져오면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접해보니 흑인의 정서가 우리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힙합을 대중화시키겠다는 마음이 앞서 무작정 가져오려고만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좋아하고 입에 붙기 편한 힙합 음악을 만들기 위해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했다. 타이틀 곡 ‘맛 좋은 산’은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영감을 얻은 노래다.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장수의 말투를 모티브 삼아 달짝지근한 랩을 완성했다.

“집에서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려고 장을 보러 가는 길에 ‘골라. 골라. 맛 좋은 딸기가 2000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먹기 좋습니다’ 이 소리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이제 막 데뷔를 앞둔 신인이었고 제 음악에 대해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일단 한 번 맛 좋은 랩을 들어보시라’ 그런 내용을 재치 있게 표현해 봤습니다.”

노래 ‘맛 좋은 산’이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박진영이다. 산이는 박진영과 작업하면서 “그가 왜 JYP 수장인지 알게 됐다”며 리더이자 프로듀서로서 능력을 추켜세웠다.

“음악하는 모습을 보면 형이 왜 대단한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재능이 한 분야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거예요. 춤도 웬만한 전문가가 추는 수준을 따라할 수 있고요. 노래 만들어 내는 감각도 탁월하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만들어내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더라고요. 해외를 오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지 정말 궁금해요. 게다가 소박한 삶도 보기 좋고요.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비싼 시계나 옷을 구입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래퍼 산이가 아이돌을 전문적으로 키워내는 JYP에 둥지를 튼 것은 다소 의외다. 힙합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도 많은데, 왜 그런 곳이 아닌 JYP였을까.

“물론 JYP가 ‘후크송’(멜로디나 가사가 일정 부분 반복되는 노래) ‘짐승돌’ ‘초콜릿 복근’을 만들어낸 곳이잖아요. 이런 현상이 가요계 유행이 됐고, 결과적으로는 획일화 현상을 부추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JYP에게 끌렸던 것은 미국 힙합 듀오 아웃캐스트와 손을 잡고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어요. 또 JYP가 만들어낸 음악이 10대나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30~60대까지 두루 좋아하시잖아요. 재밌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회사인 것 같아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산이는 이번 데뷔 앨범이 “대중이 좋아할 만한 힙합 음악으로 완성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털어놨다. 그의 꿈은 음악으로 감동을 주는 뮤지션이 되는 것이다.

“이번 앨범에 많은 걸 담고 싶었지만 미니 형태다 보니 들려드릴 수 없었네요. 정말 아쉬웠습니다. 제가 ‘서태지와 아이들’ ‘드렁큰 타이거’ 선배를 보면서 꿈을 키운 것처럼 훗날 어떤 후배가 ‘산이 선배 랩이 멋있어서 힙합을 하게 됐다’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제 음악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서 열매를 맺었으면 합니다. 이번 앨범은 ‘산이’라는 래퍼가 나타났다는 정도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 산이가 만든 맛 좋은 랩이 왔으니 그냥 한 번 맛보세요. 그런데 나중에는 꼭 사게 되실 겁니다(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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