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무대-스크린-브라운관, 이 남자가 있어 행복하다. ‘안석환’

[Ki-Z 사람] 무대-스크린-브라운관, 이 남자가 있어 행복하다. ‘안석환’

기사승인 2010-10-17 12:59:00

[쿠키 연예] 수요일과 목요일마다 안방 시청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대형 드라마인 KBS2TV ‘도망자 플랜비’와 SBS ‘대물’이 맞붙기 때문이다. 시작은 ‘도망자’가 앞서갔지만, 현재는 ‘대물’이 고현정 파워를 등에 입고 수목드라마 강자로 올라서고 있다. 그런데 경쟁 작품으로 교집합이 없었던 이 두 작품이 한 뛰어난 조연으로 인해 교집합이 만들어졌다. 바로 명품 조연으로만으로는 수식하기 어려운 배우 안석환 때문이다.

10월 6일 ‘대물’ 1회에서 안석환은 주인공 ‘서혜림’ (고현정)을 괴롭히는 보도국장 ‘손본식’으로 등장했다. ‘손본식’은 ‘서혜림’의 남편을 전쟁터로 취재 보낸 당사자로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다. 그러나 같은 날 안석환은 드라마 ‘도망자’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사채업자로 등장해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안석환의 연기력을 아는 이들은, 양 측 드라마 감독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배우라는 점을 인정한다.

1959년생 안석환은 대학 당시 오로지 술을 매일 같이 마신다는 이유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지금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1987년 데뷔한 이후 드라마와 연극 그리고 영화를 합쳐 무려 70여 편이 훌쩍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데 단순하게 작품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드라마에, 영화에, 연극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호평을 이뤘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이 안석환은 빛을 발했다. 이는 그에게 세상이 안긴 수상 경력으로 봐도 살펴볼 수 있다.

1996년과 1997년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자상을 비롯해 동아연극상 연기상 (1996, 1998), 세계연극제 연극인이 뽑은 인기배우상 (199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8), 한국연극협회 우수공연상 연기상 (1998), KBS 연기대상 남자 조연상 (2005) 은 그의 연기력에 대한 세상의 평가다.

영화, 드라마, 연극 전방위 명품 연기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한 안석환은 대학이 졸업하기 전에 가세가 기울자 돈을 벌어야 될 처지에 이른다. 이후 주경야독의 삶이 시작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었다. 부모님께 배우로 성공할테니 딱 5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중 故 박광정이 연출했던 연극 ‘마술가게’의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영화 <태백산맥>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출연한 후 본격적인 흥행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안석환은 아직도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연기했던 영화를 이 두 작품을 꼽는다.

‘명품 조연’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안석환은 2000년 영화 <하면된다>를 통해 첫 주연 신고식을 치룬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엽기파 가족의 가장 역을 맡은 안석환은 이 영화 개봉 당시, 동시 개봉되는 <싸이렌>에서 소방 반장으로 나오면서, 이후 ‘안석환이 나오는 영화와 안석환이 나오지 않는 영화’라는 충무로 구별법을 만들었다.

영화 뿐만 아니다. 드라마는 그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울고 웃고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된다. 2006년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안석환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부사 형사 ‘최장수’를 아껴주는 인간적인 형사 팀장 ‘영복’ 역할을 맡았다. 당시 안석환은 작위적으로 흐를 수 있는 진지함과 코믹함 사이를 적당히 조절하며, ‘최장수’ 역을 맡은 유오성을 뒷받침했다. 특히 현행범들을 잡으려 홀로 맞섰다가 칼에 찔러 순직하는 극적인 연기는 많은 시청자들이 호평을 받았다.

또 2009년 드라마 ‘파트너’에서는 한 사건의 피의자 양아버지로 등장하는데, 하루아침에 딸을 잃고 아들은 살인자가 되어버린 비극적인 상황에서 안석환이 가슴 절절한 대사와 진실된 오열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 시기. 2008년과 2009년 안석환의 브라운관 활동은 가히 뭐라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2008년 ‘비포&애프터 성형괴과’ ‘스포트라이트’ ‘쾌도 홍길동’ ‘바람의 화원’에 연이어 출연하더니, 2009년에는 ‘꽃보다 남자’ ‘하얀 거짓말’ 등에 출연했고, ‘경숙이, 경숙아버지’ 출연 당시에는 3편에 동시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방송가에서는 “영화에서만 특정 조연 출연 여부로 작품을 나누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그럴 조짐이 보인다. 그 선두에 아마 안석환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는 평가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석환의 고향은 연극. 영화와 연극으로 바쁜 와중에도 안석환은 매해 한편씩은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특히 2004년 연극 ‘꼽추, 리처드 3세’는 안석환이 배우로서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줬다. 이 공연이 1995년 국립극장 공연 이후 사실상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가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안석환이라는 최적의 인물이 나타났고, 연출을 맡았던 한태숙은 “그동안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이 꺼려져 온 중요한 이유는 ‘리처드3세’를 제대로 해낼 배우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며 “안석환이라는 배우가 있어 ‘리처드 3세’ 공연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당시 안석환이 맡은 ‘리처드 3세’는 왼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꼽추로 나온다. 여기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에 권력에 더욱 집착한다. 극 중 내내 등을 웅크리고 왼팔과 왼발을 한껏 뒤튼 채 하이에나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연기는 당시 ‘중노동’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작업이었다. 그것을 안석환은 호평 속에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후배와 사회 잊지 않는 눈물 많은 배우

안석환은 눈물이 많다. 방송에서 휴먼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사회 참여나 자신이 몸담은 연극계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는다. 2008년에는 산림자원이 황폐화된 북한에 묘목재배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6150명과의 프리허그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 한국 공연에 대해 걱정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가 안되는데 공연하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상업연극이 판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공연예술인이 기본으로 돌아가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아직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돈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는 배우가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석환은 영원한 배우이기 바란다. 한 인터뷰에서 안석환은 스스로 만든 십계명이 있다고 전했다. ‘남에게 믿음이 준다’ ‘원수를 만들지 않는다’ 등등. 그리고 이러한 십계명은 그가 오랫동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중들도 그가 영원한 배우로 남기를 바란다. 그의 ‘명품 연기’가 아직 스크린과 브라운과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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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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