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발견] 명계남, 정권을 조롱하고 사회에 절망하다

[Ki-Z 공연 발견] 명계남, 정권을 조롱하고 사회에 절망하다

기사승인 2010-10-17 13:00:00

[쿠키 문화]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이 시작하기 전 연출과 기획을 맡은 탁현민 P당 대표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종종 오해를 하는데, 이 연극은 특정 정치인을 비방 조롱하기 위해 만든 연극이 ‘맞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이 연극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됩니다. 연극을 보고 싶으신 분은 연극을, 조롱을 보고 싶으신 분은 조롱을, 웃음을 보고 싶으신 분은 웃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이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배우 명계남이 무대에 오르고, 이내 연극이 시작되면 명계남이 내뱉는 조롱의 강도에 내심 당황스러워 하는 이들도 생긴다. 한마디로 너무 ‘쎄’기 때문이다.

연극의 내용은 극중극 형식이다. 배우와 연출가가 ‘코르마’라는 가상국가의 통치자 ‘아르피무히 마쿠’가 동물학대죄로 처벌 받기 직전에 독재에 관해 독백하는 상황을 연습하는 이야기다. 연출자와 배우는 통치자 이름을 줄여 ‘아큐’라고 부르는 데 정작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지 극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 아큐는 중국 작가 루신이 우매한 인민을 빗대어 사용한 단어다.

그러나 이 가상국가와 이 나라의 통치자는 사실상 연극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명계남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의 정책을 비롯해 모든 행보를 끄집어낸다. 4대강 사업은 기본이고 총리 청문회, 음향 대포 등은 물론 이 대통령의 발언,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끄집어낸다. 여기에 정치인들과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그 화살은 다시 국민을 향하기도 하고,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코르마’라는 가상국가의 통치자로서 명계남이 연기를 할 때는 국민을 조롱하고 독재자의 권력에 대해 찬양한다. 명계남은 “너희들이 왜 뽑아놓고 지X야. 내가 부정선거 했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거야” “재산 형성 과정? 그거 이미 다 말했잖아요. BBQ 치킨이 왜 내 거야. 나 닭 아주 싫어해”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연출가와 배우가 연습하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염세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내가 이 연극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여기 다 우리 편이잖아” “조금이라도 머리가 깨어있으면 너무 힘들어. 그 분은 원망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나 원망스러워” 등의 독백부터, 연출과 출연을 맡은 여균동 감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 “그 이야기 하지 말랬잖아”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중간에 연극 안하겠다며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영상을 선보이며 1시간 30분 가까이 홀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명계남이 쉴 여지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영상 조차 만만치 않다. 산속서 홀로 지내는 명계남은 이 정부를 비판하고,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한다.

연극은 성향이 친정부적인 사람이거나, 중도적인 사람 모두 불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도적인 사람이나 친노 성향이라면 시원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 이렇게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명계남-여균동-탁현민이 보여주는 ‘직설’은 강하다. 또 일종의 정권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 인사 때 줄 맞춰 서며 “이것이 검찰에 소환될 순서”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후불제공연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관객들은 연극이 끝나면, 입장하면서 나눠준 봉투에 내고 싶은 만큼의 관람료를 내면 된다. 여균동 감독은 “후불제 연극의 시도는 거품을 빼고,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 실험이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고 제값도 못하는 문화콘텐츠들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편함’ ‘통괘함’ ‘웃음’ ‘조롱’ 혹은 ‘눈물’. 그 감정들을 느끼고 싶으면 오는 30일까지 홍대 소극장 ‘예’를 찾으면 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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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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