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임순례 감독 “대중과 거리감 어떻게 좁히나 고민”

[쿠키人터뷰] 임순례 감독 “대중과 거리감 어떻게 좁히나 고민”

기사승인 2010-11-05 10:50:00

[쿠키 영화] 늘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관객들에게 자연스러운 공감대와 감동을 선사하는 임순례 감독은 신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도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해서 과장된 영상 언어로 이들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어깨 너머로 따뜻한 눈빛을 보내 응원하는 가족처럼 임 감독은 그저 바라볼 뿐이고, 안아줄 뿐이다. 사회에서는 루저(looser) 취급을 받는 백수 노총각 ‘선호’ (김영필)에 대해 임 감독은 “답답한 네 이야기를 풀고 한층 성장해봐라”라고 영화 속에서 말한다. 관객들이 임 감독의 영화를 편안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이 감독의 시선 그대로를 따라기 때문이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던 어느 날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임 감독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공기를 훈훈하게 바꿔놓았다.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생각하면 남녀의 러브 로드 무비라고 볼 수 있지만, 불교와 동물 그리고 감독이 임순례라는 사실이 들어가면 왠지 무게감이 더해집니다.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전 시사회 할 때마다 관객들에게 그냥 두 사람 이야기를 따라가라고 말을 합니다. 남자가 소 팔러 나갔다가 옛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 티격태격하며 과거의 감정을 털어버리는 과정을 그냥 보라고요. 그런데 관객들은 뭔가 굉장히 깊은 주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영화 끝 부분에서 남자 주인공 선호가 다시 소를 끌고 집으로 오게 됩니다. 자아 찾기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체념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아를 찾은 거죠. 이 영화에서는 눈에 보이는 소 말고도 불교에서 말하는 ‘심우도’를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성을 찾는 건데, (선호가) 소와 여정을 통해서 자기의 집착, 원망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죠. ‘맙소사’를 불태우는 것이, 바로 그런 자신의 마음을 태우고 돌아가는 거죠. 또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과 똑같지만 사실 변화를 가진 상태에서 돌아간 것이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장면입니다”

▷ 러브 로드 무비라는 면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 공효진이 연기한 ‘현수’입니다. 남편 피터의 죽음 이후 ‘선호’를 대하는 모습이 평범한 여성은 아니라고 보이거든요.

“소설에도 원래 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자유롭고 편견이 없는 여자라 생각을 했어요. 흔히 초상을 당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모습이 있는데, 옛 남자를 만나서 여행을 하고, 대하는 모습이 평범하지는 않죠. 또 이 남자가 찌질하게 과거에 연연하는 캐릭터라면 남자보다는 훨씬 더 감정적으로 ‘쿨’하고 성숙하죠”

▷ 잔잔할 것 같은 스토리가 다소 엉뚱하면서도 관객들을 혼동시키는 것이 ‘선호’의 꿈과 회상장면들입니다. 어느 관객의 말대로 정신 차리지 않고 보면, 중간에 어떤 것이 현실인지 놓칠 수도 있던데요.

“극 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불가의 시간이 속세의 시간과 같을 수 없다는 말이 있죠.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실체라는 것이 과연 현실인가 생각해 볼 수 있죠. 현실이 절대적으로 진실이고, 꿈은 꿈일 뿐인가라는 것들이요. 불가에서는 그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눈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이 아니죠. 결국 이 친구가 이를 깨달아가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죠. 관객들도 집중 안하면 놓칠 수 있지만, 중간중간 ‘꿈’이라는 대사를 넣는 등 장치를 해놨어요. 원작 소설은 더 엄청나게 섞여있어서, 나름대로 정리한다고 했는데 혼동할 수는 있겠죠”

▷ 영화의 서두와 끝이 임순례 감독의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극적으로 정리될 때, 다시 다른 일들이 연결되는 것도 그렇고, 처음과 끝 장면이 똑같은 것도 그렇고요.

“절망에 처한 주인공이 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은 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주인공이 액션을 취하기 위한 것은 위기가 있어야 하는 거죠. 또 ‘와이키키 브라더스’때도 첫 장면과 끝 장면을 똑같이 갔거든요. 하지만 이번과는 조금 달라요. ‘와이키키’는 절망적인 암시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반대로 ‘희망’을 주기 위해 앞 장면과 뒤 장면을 똑같이 한거죠”

▷ 배우 이야기를 해보면 이번에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김영필은 스크린에서는 무명의 신인입니다. 과거 <와이키키브 브라더스> 때 인터뷰에서 영화에 스타 배우가 없는 이유를 실패한 인생들의 꿈과 희망에 관한 영화에 스타가 나오면 고정된 캐릭터로 뒤죽박죽 된다고 말하셨는데, 이번 캐스팅에도 그러한 전제가 깔렸나요.

“<와이키키> 할 때는 그런 생각이 컸어요. 사실 그때 잘나가는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줬어요. 그런데 그 스타들이 거절을 해서 어쩔 수 엇이 무명으로 간거죠. 하지만 저는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무명이지만 연기 잘하는 친구들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봤죠. 그런데 이제 제 생각도 많이 변한 이유가 관객들이 배우가 무명이면 영화를 보지 않아요. 저도 이번에는 어쨌든 스타급 배우를 찾아보려 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스타급들이 남자 주인공을 찾았는데 다들 거절을 했어요. 저예산이고 소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무명으로 갈 수 밖에 없고 김영필을 선택한거죠”



▷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했던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 주진모, 오광록 모두가 충무로의 기둥이 되었는데, 이번 배우 김영필도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와이키키>에 출연했던 황정민 씨나 박해일 씨는 자질을 떠나서 나이나 시간을 충분히 주연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영필 씨는 나이가 애매하기는 해요. 조연 캐릭터가 아니라 주연으로 성장을 계속 해야 하는데, 영화라는 매체에 적응을 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나 본인이 열심히 한다면 한국 영화의 한 주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뜻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잘 살린다면요”

▷ 또다른 주인공인 소 ‘먹보’가 의미가 다양하면서도 사실 쉽게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호’의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피터’인 것 같기도 하고요.

“소는 제가 보기에는 주인공의 마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싫어하잖아요. 그런 e상으로만 여기고 귀찮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여행을 하면서 소랑 친구가 되잖아요. 소의 마음을 이해하고, ‘맙소사’ 불태울 때는 대화도 하고요. 그러면서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피터’에 대한 원망, 여자에 대한 원망, 그런 것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정화하고, 정리하고 다시 데리고 들어간거죠”

▷ 최근에 <날아라 펭귄>을 제외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그리고 지금 준비 중인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등 주로 9자로 된 제목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제목이 직접적이라는 느낌이 강한데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사실 마케팅팀에서 올라온 제목인데, 저는 반대했어요. 영화 대사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너무 직접적이어서 눈에 띄고 낯간지러웠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마케팅팀의 판단이 맞는 것 같아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출할 때 <소와 함께 4박5일>로 했는데, 나중에 고민하다가 원작이 쓴 원제로 갔죠. 그리고 관객들이 한번 들었을 때 기억이 되는 포인트를 주다보니 직접적으로 간 것이 맞죠”

▷ 준비 중인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은 느낌으로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과 이어지는 듯 하기도 합니다. 어떤 영화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단 그 제목은 가제죠. 사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동물 영화는 아니죠. 이 영화는 농림수산부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데, 농수산부가 고기로서의 축산도 장려하지만, 유기견도 소관업무에요. 그것에 관한 홍보도 맡아달라고 해서, 송일권 감독님 등 네 명의 감독님과 네 편의 옴니버스를 제작하게 된 거에요. 25분짜리 단편인데, 세 분은 다 찍었고, 저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촬영 일정 때문에 이제야 찍게 된 거에요”

▷ 영화를 찍는 분들이나 관객들 입장에서도 환경이 많이 변했는데, 감독님이 향후 추구하려는 방향이 있으신지요.

“환경이 많이 변하긴 했죠. <세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같은 시나리오를 지금 썼다면 아마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에요. 10년 전이니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배급이 가능했죠. 지금은 관객들하고 접점을 넓혀가는 고민을 해야될 부분이 있어요. 제 개인 정서가 대중적인 정서는 아니거든요. <와이키키>나 <세친구>가 마이너리티한 정서이고 대중과는 거리감이 있죠. 그런데 그 거리감을 좁혀가는 방법이 제 고민인거죠. 지금은 대중들에게 제 정서를 알아봐 달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생순>처럼 대중들의 정서와 맞아야 하는거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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