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맛이었다. 입맛을 자극하는 향신료나 맛을 과대하게 포장하는 조미료를 넣지 않았는데도 감미롭고 풍부하게 맴돌았다. 바로 세계적 팝스타 스팅(60)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완성시킨 120분의 맛깔 나는 공연이 그러했다.
‘백전노장’ 스팅은 음색이나 무대 매너에서 세월의 흔적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록이 더해지면서 음색은 깊어졌고, 무대 매너는 한층 여유로워졌다. 좌중을 압도하고 관객을 집중시키는 능력은 지난 33년 동안 세계 무대를 누비며 정상의 자리에서 인기 뮤지션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짐작케 했다.
검은색 정장에 빨간색 셔츠로 단정한 멋을 낸 스팅이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장내는 일제히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1998,2005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한국을 찾은 스팅을 환대하는 듯 표는 일찌감치 동났다. 이마저도 모자라 오후 8시20분부터 공연이 열린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내 공터에는 간이 의자가 꽉 들어찼을 정도다. 1회 공연에서 이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힘. ‘한국인이 사랑하는 뮤지션’이라 부르는 이유를 증명하는 대단한 티켓파워였다.
스팅의 이번 공연은 기존에 열린 두 차례의 내한공연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한층 풍부해진 음으로 찾아온 것. 지난해 7월 발매한 앨범 ‘심포니시티즈’(Symphonicities)에서 시도한 것처럼 자신의 노래를 클래식과 접목시켜 색다른 형태를 완성시켰다. 앨범 발매 기념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80여 차례 공연을 했으며, 아시아 투어로는 가장 먼저 한국을 택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지휘자 스티븐 머큐리오와 한국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췄다. “너무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서 미안하다. 한국 관객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다”는 스팅의 호언대로 그의 히트곡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웅장하고 거대했다.
1부에서는 하모니카와 기타로 연주하는 스팅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스팅은 두 번째로 부른 노래 ‘에브리 리틀 씽 쉬 더즈 이즈 매직’(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을 부르면서 하모니카로 연주로 관객의 흥을 북돋았다. 주옥같은 명곡 ‘잉글리쉬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을 부를 때에는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영화, CF 등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쉐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를 부를 때에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쓸쓸한 느낌의 기타 선율이 흘러나오자마자 관객은 휘파람을 보냈다. 육성으로 들어본 스팅의 명곡은 예나 지금이나 녹슬지 않았다. 옆에 앉았던 관객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며 “저 나이에 어쩜 저렇게 실력이 변함없을까”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쉴 새 없이 곡을 쏟아냈던 스팅은 20분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무대에 섰다. 지칠 법도 하건만 관객의 환호에 기운을 얻었다는 듯 활기찬 분위기로 2부의 막을 열었다. 2부는 매혹적 목소리로 깊은 음색을 강조한 노래로 꾸미며 변함없는 실력을 과시했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감미로웠다. 특히 노래 ‘문 오버 버번 스트리트’(Moon over bourbon street)를 부를 때에는 고음과 저음을 수려하게 넘나드는 실력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노래 ‘디스 카우보이 송’(This cowboy song)을 부를 때에는 기타를 들고 몸을 좌우로 흔드는 팬 서비스도 보여줬다.
이날 특이했던 현상은 관객의 휴대전화 불빛이 물결을 이루며 빛났다는 것이다.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나 신세대 가수가 아닌데다 외국 관객도 상당해 국내 콘서트 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형형색색 야광봉이나 플랜카드를 들고 흔드는 관객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스팅의 명곡이 나올 때마다 저마다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공연 실황을 녹화해 화면 불빛이 물결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외에도 스팅은 이날 노래 ‘이프 아이 에버 루즈 마이 페이스 인 유’(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스트레이트 투 마이 하트’(straight to my heart), ‘어 싸우전드 이얼즈’(A Thousand years), ‘킹 오브 페인’(King of Pain), ‘올 우드 엔비’(All Would envy) 등 23곡의 히트곡을 열창하며 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새 앨범 ‘심포니시티즈’(Symphonicities) 발매 기념으로 열린 이번 공연은 한국을 거쳐 순차적으로 아시아 투어로 이어진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