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 신라호텔에선 한복이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는 옷이었다.
한복 디자이너 담연 이혜순씨는 12일 지인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신라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인 파크뷰를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이씨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쌍화점’의 의상을 제작한 유명 한복 디자이너다.
20년째 평상 한복을 입고 다니는 이씨는 이날 식당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직원은 예약자명을 찾는다며 시간을 끌더니 한참 뒤에야 “호텔엔 드레스 코드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어 “한복은 출입이 안 되지만 오늘은 입고 오셨으니 들어가라”며 관용을 베풀 듯 말했다.
이씨는 지난 해 겨울에도 이곳을 찾았다. 그때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출입했다. 직원이 손수 외투까지 받아줬다. 그랬던 식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때부터 식당 측과 이씨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이씨는 “한복을 입어서 입장 거절이라니요. 저 지금껏 2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한복을 입고 다녔지만 어디에서도 출입을 금지당한 적이 없습니다”라며 책임자를 불러달라고 했다.
잠시 후 파크뷰 당직 지배인이 나왔다. 사과를 기대했던 이씨는 다시 한번 호텔 측의 불성실한 대응에 할 말을 잃었다.
이씨에 따르면 당직 지배인은 “한복은 위험한 옷이기 때문”이라며 “한복은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복 대례복도 아니라 평상복이고 한복에 철사가 있나, 송곳이 있나”라고 항변한 뒤 양장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말 위험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제지를 당했다면 이해를 한다”면서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물론 국내 어떤 식당에서도 이런 제지를 당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호텔 측은 ‘규칙’이라는 말만 고집한 채 물러서지 않았다. 호텔 측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씨는 “‘신라호텔의 정체성이 뭐냐’고 묻자 당직 지배인은 ‘이름에 정체성이 있다’는 말장난으로 일관했다”고 털어놨다.
당직 지배인은 또 “예약 손님에게도 한복을 입으면 입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이씨에게 당당히 말했다.
이씨는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 문화의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다른 나라는 민족 복식을 입고 다니면 칭찬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가까운 일본만 해도 기모노를 입고 다니면 칭찬을 한다”면서 “하지만 20년 한복을 위해 일해 온 결과는 어제와 같은 대우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우리 역사와 함께 한 우리의 문화를 두고 ‘들어올 수 있다, 없다’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한복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트위터는 신라호텔을 질책하는 목소리로 시끄럽다.
@joynzu**는 “제가 존경하는 한복디자이너 담연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늘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전파하시는 담연 선생님이 신라호텔 파크뷰에서 한복입장을 거절 당했“고 당시 사정을 알린 뒤 수 많은 트위터러들이 리트윗했다.
트위터러들은 “일제시대나 다름없다”, “한복을 입으면 오히려 할인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등 비난의 글을 올렸다.
유명인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했다.
개그맨 이병진은 “신라호텔에서 한복 입고 정모(정기모임)하자”고 거들었다.
영화배우 김여진도 “신라호텔 레스토랑에서 누가 밥 사준다고 할까봐 미리 하는 고민”이라며 “장덕 의녀 버전으로 걸 것인가, 정순왕후 버전으로 갈것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김여진은 사극인 ‘대장금’과 ‘이산’에서 각각 의녀 장덕과 정순왕후 역할로 출연했다.
트위터를 통해 소식이 전해지자 호텔 측은 신속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13일 오전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이사가 이씨를 직접 찾아 사과의 뜻을 전했다. 신라호텔도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제목의 해명 보도자료를 냈다.
신라호텔 측은 “뷔페 식당의 특성상 고객간 접촉이 많은데 과거 한복을 입은 손님의 옷에 걸려 넘어지는 등의 불만사항이 발생한 사례가 있어 내린 조치였다”면서 “입장 전 한복을 입은 고객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도록 했지만 근무 직원의 착오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