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人터뷰] 유호정 “아역들 실력 보고 출연 거절할 뻔”

[Ki-Z 人터뷰] 유호정 “아역들 실력 보고 출연 거절할 뻔”

기사승인 2011-05-17 11:29:00

[쿠키 영화] 유호정이 두 번째 스크린 나들이를 했다. 1980년대 여고 생활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영화 ‘써니’를 통해서다. 속칭 ‘7공주파 클럽’인 ‘써니’에서 미술학도를 꿈꾸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나미’ 역을 맡았다. 지난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이후 9년 만이다.

“‘취화선’ 때는 영화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연기자 생활을 오래 했지만, 어찌하다 보니 드라마만 하게 되었고 영화는 출연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9년 전에도 개인적 사정 때문에 참여를 못할 뻔했어요. 아이를 갖고 일을 쉬고 싶었죠. 영화사 대표께서 분량도 많지 않으니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임신 상태에서 연기를 했죠. 저한테는 첫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임권택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 등 기라성 같은 분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어요.”

오래된 기억을 더듬던 유호정은 9년의 스크린 공백이 의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가 일부러 영화에 안 나오는 건 아니에요. 저도 배우이고 브라운관이든 스크린이든 그 안에서 연기를 하는 게 제 몫이죠. 영화 쪽으로 많은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들어온 시나리오도 저랑은 안 맞았어요.”

영화에서 보기 힘든 배우 유호정, 필모그래피를 쌓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과 잘 맞는지를 고민하는 배우이기에 ‘써니’를 선택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보기 힘들 정도로 따뜻한 느낌의 시나리오였어요. 보는 내낸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죠. 여자들의 우정을 찾아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쉽게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단순히 유머코드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시나리오를 10번은 더 봐야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속에 숨겨진 이야기와 여운이 많은 이야기였어요. ‘나미’라는 인물도 지금 제 나이에서, 제가 표현해 볼 만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배우라면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당연히 자신감을 갖겠거니 싶지만, 그렇지도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유호정은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고, 그보다 더 큰 ‘믿음’을 보여 줬다. 신뢰는 자신과 함께 출연한 13명의 배우들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됐다.

“영화는 잘 나온 것 같아요. 원래 영화를 처음 보면 제 것만 보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데, 우리 영화는 다른 작품에 비해서 전체가 보여요. 배우들이 자기 몫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 역할을 해낸 것 같아요.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함께였구나’라는 것을 큰 화면을 통해 본 거죠. 저도 많은 작품을 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영화 ‘써니’, TV에서만 보던 유호정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반가움도 컸지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액션 연기’를 보는 맛도 쏠쏠했다. 단아한 이미지, 똑 부러지는 캐릭터를 연기해 온 유호정이 여고시절을 일진(학교에서 싸움을 잘하거나 잘 노는 것으로 유명한 아이들)으로 보낸 어른 연기를 하면서 액션을 한다는 자체가 ‘파격’이었다.

“보기에는 어설펐을지 몰라도 나름 많이 준비한 거예요. 저도 주위에 ‘내가 영화에서 와이어 액션을 한다’고 자랑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본 분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뭐가 와이어 액션이냐는 거죠(웃음). 액션 연기 준비한다고 액션 스쿨에서 와이어 타는 연습도 했는데, 화면에는 그렇게 나온 것이죠. 사실 그 장면은 감독님에게 미안해요. 좀 더 열심히 해서 감독님이 원하는 장면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안 따라 준 거예요. 현장에서는 더 가관이었어요, 후반 작업의 승리죠. 스스로 몸 연기 못하는 걸 알기에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촬영 후 집에 가니 온 몸에 멍이 들었더라고요. 찍을 때는 아픈 줄도 몰랐고요.”

액션 뿐이 아니다. 유호정은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춤 솜씨도 뽐낸다. 장례식장에서 병으로 죽은 친구의 유언에 따라 ‘써니’ 멤버들이 고등학교 축제 때 못 췄던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때도 타고난 ‘몸치’ 유호정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전 안 추던 춤을 췄더니 사람들이 저보고 왜 이리 뻣뻣하냐고 하더군요. 저는 그거 두 달 연습한 거예요. 그 두 달 동안 개인레슨 받은 실력이 그거인 거죠(웃음). 감독님도 그런 저를 잘 아셨는지 ‘춤 잘 출 필요 없어요. 그냥 아줌마처럼 추면 돼요’ 하셨고 ‘선배님, 그런데 연습은 하세요. 동작은 맞아야죠’ 정도만 주문하시더라고요. 저는 순서만 열심히 외운 셈이죠. 몸이 안 움직여지는 건 타고난 몸치라 할 수 없어요. (심)은경이는 춤을 잘 추지만 못하는 척 하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못하는 게 보이니까요.”

‘써니’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로 유호정의 고등학교 시절과 비슷하다. 하지만 아역을 담당한 배우들은 그 시절에 갓 태어났거나, 태어나지도 않은 시기다. 후배들의 연기를 위해, 영화 속 배경에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성인 연기자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법 싶다. 하지만 답변은 의외였다. 바로 그 아역 담당 배우들 때문에 유호정이 출연을 고사하려 했다는 고백이 돌아왔다.

“그 친구들과 촬영 현장에서 부딪치지는 않았어요. 처음 대본 연습하던 날 만났는데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잘해서 속으로 ‘큰일이다, 나 이러다 망신당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만큼 잘하더라고요. 제가 거기에서 감히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친구들은 이미 영화에 빠져 있었던 거죠.”

후학(後學)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위축감으로 이어졌다. “첫 연습을 하고 나서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저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돼야 하는데, 연기 20년 경력인 제가 후배들 열정에 기가 죽은 거죠. 그래서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못 주고, 지금까지 해온 연기도 오히려 축낼 것 같다는 두려움에 감독님에게 ‘돈 돌려줄 테니 안 하겠다’고 말했어요. 감독님이 난리 났죠. 그래서 둘이 만났는데, 감독님이 ‘선배님, 부끄럽지 않은 작품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거기에 마음이 누그러져서,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는 감독님이 계신데 한번 해보자, 생각을 바꿨죠. 2회차 분량을 찍는데, 감독님의 거의 모든 것을 봤어요. 제 연기의 0.01초까지도 감정 선을 잘 끄집어내더라고요. 나만이 아는 감정을 모니터를 보며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믿음이 생기고, 현장이 편해졌어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촬영에 임한 유호정이 아역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놀라움은 영화가 공개된 후 극찬으로 바뀌었다.

“아역들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그동안 타성에 젖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그 나이 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잘해 줘서 우리가 빛나고, 우리가 잘해야 그 아이들이 빛난다고 생각했죠. 정말 저 데뷔할 때와 비교하면 그 아이들은 프로예요. 저는 참 못하면서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몰라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이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극중 ‘나미’는 친구 오빠의 친구인 ‘준호’를 짝사랑한다. 여고시절 짝사랑이자, 첫사랑이다. 하지만 ‘써니’ 모임의 다른 멤버와 연인 관계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시간이 흘러 ‘나미’는 자신의 첫사랑 ‘준호’를 찾는다. 영화에서는 애틋하면서도 아련하게 비친 이 장면에 대해 유호정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이제서야 전하네요’라고만 말하고 그림을 전해 주잖아요. 그런데 편집된 대사가 하나 있어요. 그림을 주러 계산대 앞으로 갔을 때, (첫 사랑이었던 준호가) ‘5000원입니다’라고 커피 값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너무 슬픈 거예요. 첫사랑이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픈데, ‘5000원이에요’라고 말하니, 울컥한 거죠. 그래서 감독님에게 너무 슬픈 멜로라고까지 말했어요(웃음).”

진정 유호정을 울컥하게 만든 말은 따로 있었다. 이미 자신도 어느덧 그 시대를 거쳐 중년의 나이가 됐기에, 또래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그 누구보다 깊었던 것이다. 말기 암을 앓는 ‘춘화’(진희경)를 떠나보내기 전 나눈 대화가 유호정의 심금을 울렸다.

“춘화에게 ‘아득한 저편의 기억이었는데 다시 찾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또 춘화가 남긴 비디오를 보면서 회상하는 장면도 (연기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 보니 행복한 연기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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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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