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영화 ‘마마’에는 세 명의 엄마가 나온다.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들을 사랑하며 “아들은 내게 은인이다”라고 눈물짓는 엄마,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살다가 자신도 암에 걸려 힘겨워 하는 엄마. 경쟁 사회에서 교수이자 유명 소프라노 가수로 고군분투한다는 이유로 ‘왜 힘들게 사는 나를 몰라 주냐’며 딸과 다투는 철부지 엄마이지만 결국 힘이 돼 주는 엄마. 세 엄마 모두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습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건 마지막 엄마 희경일 것이다.
뮤지컬배우이자 영화배우인 전수경이 연기한 희경은 극중에서 ‘밉상’으로 그려진다. 감기 걸린 딸을 ‘목이 중요한 내게 병 옮으면 안 된다’며 쫓아내는가 하면 엄마를 도우려는 딸의 손길을 뿌리친다. 지난달 2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전수경은 “처음에는 희경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연기에 몰입할수록 캐릭터가 가슴에 와 닿았단다.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 너무 좋은 분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주로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래?’ 그러죠.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을 너무 극대화해서 보여 주기에 관객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지만 현실의 일부분이죠.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요. 엄마와 그렇게 살지 않았고, 제 딸들이 너무 예쁘니까요. 제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그런 독한 말을 딸에게 할까’ 의아했는데요. 희경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영화 속 희경의 상황은 전수경과 꽤 닮아 있다. 뮤지컬 무대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는 배우인 것도 딸을 둔 엄마인 것도 전수경의 현재 삶이다. 현실에 맞닿아 있으니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높지 않았을까.
“저랑 너무 닮았죠. 상황이야 다르겠지만 희경이 느낄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서 젊은 배우에게 배역을 빼앗기거나 아이돌에 밀려 배역에서 잘리는 상황은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이돌에게 밀린 건 아니지만 저도 작품에서 해고된 적도 있고, 오디션에서 떨어진 적도 있으니까요. 남들이 볼 때는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가족을 부양하고 있음에도 그들에게 위로를 받지 못하는 희경의 상황도 이해되고요. 여러 모로 희경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죠.”
딸로 출연하는 배우 류현경과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17년차 선후배 사이다. 먼저 캐스팅 돼 전수경이 류현경을 추천했다. 털털한 성격이 딸 은선과 닮아서다.
“(류)현경이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은선이랑 비슷해요. 악착같아 보이지도 않고 털털하잖아요. 제작자가 ‘은선이 하면 누가 떠올라요’라고 물어서 현경이를 추천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각자 느낀 대로 연기했죠.”
전수경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하다. ‘마마’에서의 도도한 대학교수에서 과거 ‘강철중-공공의 적’에서 냉장고 속 생수로 더위를 식히는 설경구를 노려보던 슈퍼마켓 주인아줌마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캐릭터를 능숙하게 입고 벗어 온 배우다.
“저 우아하지 않은 거 잘해요. 남들이 너무 우아하게 봐 주셔서 그렇지, 노숙자 같은 역할도 잘할 수 있죠(웃음). 그리고 ‘강철중’은 케이블 영화방송에서 하도 많이 나와서 전 국민이 다 봤을 거예요. 생수 파는 장면은 사람들이 대사까지 기억하더라고요.”
전수경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얼마 후 영화 ‘마마’를 만났다. 수술 탓에 뮤지컬 출연도 취소했던 그가 회복기에 굳이 영화 촬영이라는 무리한 스케줄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욕심이 있었어요. 시나리오도 좋았고요. 수술 의사에게 목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걱정 많이 했죠. 내가 노래를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영화라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제작 쪽에서도 저의 상황을 알고 배려를 많이 해 주셨어요. 혹시라도 피곤하면 쉬면서 하게 해 줬고요. 다행히 촬영 전에 방사선 요오드 치료가 끝나서 회복 후 시작하게 됐죠.”
뮤지컬 무대에서 전수경의 카리스마는 독보적이다. 뮤지컬 ‘맘마미아’ ‘금발이 너무해’ 등의 무대를 통해 강렬한 힘을 증명했다. 뮤지컬과 영화를 겸업하는 많은 배우들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전수경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배우를 동경하는데 있어서 저를 사로잡은 장르가 뮤지컬 영화예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집시’ 등이죠. 먼저 시작한 게 뮤지컬이었는데 오디션에 계속 붙고 주인공도 시켜 주니까 바쁘게 일했죠(웃음). 영화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어요. 가끔 대학 동기나 선배들이 감독 데뷔할 때 불러주곤 했는데, 감사했죠. 그런데 영화 현장에서는 이방인 같았어요. 낯 가리는 성격인데다 적응도 안 되고 재미도 없더라고요. 화면에도 너무 예쁘지 않게 나와서 더 예뻐지면 하려 했고요(웃음). 그러다가 ‘최강의 로맨스’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흥행은 안 됐지만 ‘싸움’ ‘가루지기’ 등에도 출연했고요. 아쉬운 것은 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묘도야화’라고 있는데 개봉이 안 됐어요. 정말 코미디의 끝을 보여 줬는데 말이죠.”
전수경은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1988년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동상을 받았다. 당시 금상을 받은 가수가 ‘마왕’ 신해철이다. 그 전에는 방송사 탤런트 시험도 봤다. 가수, 탤런트, 뮤지컬배우, 영화배우… 다양한 영역에 발을 담가 본 셈이다. 그러나 욕심은 더 컸다.
“할 거 많죠. 뮤지컬 연출은 해 봤으니 영화 연출도 해 보고 싶고요.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어요. 방송 토크쇼가 너무 재미 위주로 가고 자극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잖아요. 특별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느낌으로 여성 이야기를 해 보는 거죠. 또 영화로 상도 받아 봐야죠. 뮤지컬은 지금보다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영화로는 보여 드리지 못한 모습이 많으니까요.”
아직도 건강 회복에 힘쓰고 있는 그에게 좀 무리한 요구를 해 봤다. 스크린 속 전수경과 더불어 무대 위 전수경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무대 복귀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목소리라는 게 그냥 내는 것과 움직이면서 내는 것이 달라요. 그래서 뮤지컬은 몸을 좀 더 회복하고 하려 해요. 제가 ‘맘마미아’ 공연 중간에 빠져서 뮤지컬 팬들에게 죄송했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복귀 무대는 ‘맘마미아’가 좋겠죠. 올 가을에 서울공연을 시작한다는데 노력해 보려고요.”
전수경은 인터뷰 말미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인터뷰가 이뤄진 날은 SG워너비 멤버였던 가수 채동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날이었다.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어요. 암에 걸리고도 자식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좋지 않은 생각일랑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 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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