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한층 높이긴 했지만 그 전부터 김범수는 이미 자신의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개최하는 국내 대표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다. 때문에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 김범수를 경험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 기회를 김범수는 자신의 7집 앨범 ‘솔리스타’(Solista) 파트2를 통해 대중에게 제공했다.
‘솔리스타’ 파트2는 지난해 10월 ‘지나간다’를 타이틀곡으로 했던 파트1에 이어 8개월 만에 나온 앨범이다. 이번에는 ‘끝사랑’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나가수’의 바쁜 일정과 뜨거운 인기 속에서 앨범까지 제작한 걸 보니 보통 욕심쟁이가 아니다.
“방송에 늘 출연하면서 바쁜 게 일상화되어 있는 가수들은 저를 보고 ‘조금 바빠졌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갑자기 바빠졌고 또 방송의 여파를 생각하지 못했기에 사실 지금 제가 지쳐 있어요. 바쁘지만 앨범 준비를 해야 하고, 그러면서 공연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이죠. 재미있는 건 예전 같았으면 이런 활동이 불가능 했을 텐데 지금은 시청자 분들의 응원도 받고 하니까 잠도 줄고 몸이 지쳐 있는데도 활동이 되더라고요. 참 신기해요.”
앨범의 결과는 확연히 드러났다. 파트 1은 뛰어난 앨범임에도 대중의 시선을 잡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김범수라는 가수의 인지도 문제였다. 비슷한 시기에 낸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OST ‘나타나’는 흥행 대박을 냈다. 드라마의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파트2는 초기 반응부터 다르다.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다. 물론 자신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나가수’ 음원과 승부를 벌여야 하지만 상위권에 내 노래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경험을 해 보는 기회도 갖게 됐다.
“사실 ‘보고 싶다’ 이후에는 음악 차트를 잘 보지 않았어요. 차트를 보면 상처받기도 했고 앨범이 나와도 10위권에 들어가기도 힘들었고요. 물론 활동을 잘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지나간다’ 때는 왕성하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어요. 내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무리였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가수 인생에 고비가 찾아왔나 고민도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수의) 목소리 수명을 7년이라고 하는데 이제 내 목소리가 먹히지 않나 생각도 했죠. 박선주 선생님의 보컬 스타일을 바꿔 보라는 조언도 있어서 더욱 고민이 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타나’가 잘 되고 ‘나가수’ 출연까지 하면서 놀랐어요. 전 똑같이 노래했는데 대중의 반응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대중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된 거죠. 그래서 이번 앨범은 아예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대중의 기호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제가 파트1에서 했던 기획의도만 잘 살려서 파트2를 내자고 생각했죠. 물론 ‘나가수’의 영향을 기대한 부분은 조금 있었어요. 차트를 잘 안 보는데, 이번 앨범은 살짝 봤더니 순위가 오르더라고요.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었죠(웃음).”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끝사랑’은 ‘보고 싶다’에서 호흡을 맞춘 작곡가 윤일상과 작사가 윤사라가 8년 만에 다시 뭉쳐 작업한 노래다. 김범수가 신인 가수로 활동할 때 히트곡을 냈던 멤버들이 어느새 성장한 가수를 중심에 두고 다시 명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8년 전에는 제가 어렸을 때라서 그들과 사랑이나 인생을 논할 만큼 공통분모가 없었죠. 그저 곡을 의뢰하고 받아서 열심히 노래하는 가수와 작곡가의 만남일 뿐이었어요. 8년 만에 만난 윤일상과 윤사라는 이제 인간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그런 관계가 돼 있었어요. 이번 앨범 작업을 통해 그들에게 내 사랑이나 아픔을 상당히 많이 얘기해 줬어요. 내 얘기가 곡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해 주시더라고요. 원래 작사가들이 한번 글이 막히면 10일 이상 걸려도 가사가 안 나오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7~8개가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그 가사들 중에 좋은 것만 뽑아서 조합시켜 만든 곡이죠. 만들어 놓고 보니까 진짜 그날 우리가 논의했던 인생 얘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어요. 내 사랑 경험 얘기가 가사 위에 딱 완성이 되어 있는 거예요. 이 노래는 정말 내 노래처럼 부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노래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특히 ‘이 비가 그치길 바래’는 제가 작사한 노래인데 전체적으로 현재 상태나 제 감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어렵게 만든 앨범을 대중이 예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김범수의 생각이 변한 것에서 기인한다. 예능 프로그램이 음악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데뷔 후 처음으로 토크 예능에 나갔다.
“좋은 프로그램만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예능이라는 것은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관심도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근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능에도 진솔한 얘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더라고요. 이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내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 활동 때는 예능 출연도 고려하고 있어요. 혹자들은 ‘이번에도 예능 활동 안 하더라’라고 말하는데 다른 가수들에 비해 적게 하는 것일 뿐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김범수가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마음껏 펼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스러움’에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까지 7집 파트1로 활동했던 김범수는 올해 1월 한 달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마라도에 고립되기도 했다. 나이가 있는 올레꾼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음악 한다는 말에 ‘배고파도 열심히 해야지. 젊은 사람인데 열심히 하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겠지’라는 애정 어린 충고까지 들었다. 세상에서 누린 이런 자유가 가수 김범수에게 에너지가 돼 왔다. 그런데 ‘나가수’ 출연 이후에는 이러한 ‘자유’를 빼앗겼다. 편하게 슬리퍼 신고 극장 가던 가수 김범수가 영화관 근처에도 갈 수 없게 됐다.
“‘나가수’ 나오기 전에는 대중교통도 이용했죠. 쇼핑도 하고 극장이나 놀이공원 같은 사람 많은 곳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못 가요. 제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거 굉장히 좋아하는데 지금은 갈 수가 없죠. 10년 동안 잘 다니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니 익숙하지가 않아요.”
10년간 쌓아 놓은 내공은 당분간 김범수를 자유롭게 하리라. 또 에너지가 바닥나기 전에 또 다른 ‘충전 법’을 찾아 내 계속해서 대중 앞에 서리라, 다시 한 번 달라진 새로운 노래로. 가수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리는 김범수이니까 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