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데뷔 40년 양희은, 두려웠던 노래를 즐기려 하다

[Ki-Z 사람] 데뷔 40년 양희은, 두려웠던 노래를 즐기려 하다

기사승인 2011-07-11 14:07:00

[쿠키 연예] 지난 2008년 11월, KBS ‘콘서트 7080’ 제작팀이 200회를 맞아 만 39세 이상 59세 이하 남녀 누리꾼 1988명을 대상으로 ''불후의 명곡''을 조사한 결과 양희은의 ‘아침이슬’(김민기 작사·작곡)이 1위였다. 지지율이 무려 48.8%(971명)였다.
2위가 고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였고, 3위가 조용필의 ‘친구여’였다. 1990년대 말, 북한 평양의 가라오케에는 남한 가요 중 유일하게 ‘아침 이슬’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침 이슬’은 가수 양희은의 1971년 데뷔곡이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양희은의 목소리는 TV를 통해, 라디오를 통해, 콘서트를 통해 대중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었고, 지금도 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양희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극찬과는 달리 “가족을 위해 노래했을 뿐이고, 그 노래로부터 도망가려 했으며, 그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라디오 진행자를 맡았고 그로 인해 사랑받았다”고 40년 가수 인생을 회고했다.

- 대중음악계의 대모, 그러나 ‘살기 위해’ 노래했다.

지난 2009년 세 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노르웨이 출신 재즈가수 잉거 마리(Inger Marie)는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양희은의 노래는 아름답고 조용하다. 동시에 슬픔과 애수에 젖게 한다”며 “‘사랑 그 씁쓸함에 대하여’는 가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음에도 느낌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영어로 개사한 ‘Even When’을 불러 노르웨이에서 사랑받았다.

해외 아티스트의 평가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양희은에 대해서 평론가들은 “그녀의 노래는 뒷동산의 오래된 느티나무처럼 편안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일상의 쉼표 같은 노래,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는 손으로 짠 스웨터 같은 노래”라는 평가를 했다. 또 “예술에 대한 허위의식과 대중에 대한 아부를 봉쇄한 듯한 어린 대학생의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양희은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혁명적인 보컬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톤과 에너지와 발성은 애상과 영탄으로 점철되어 온 한국 대중음악의 짙은 내적 상처를 일거에 치유했다. 그리고 윤심덕과 이난영 이후 쏟아졌던 여성 보컬리스트에 대한 가학적 편견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그는 보컬 하나만으로도 독창성과 역사적 의미를 발효시킨 거의 유일한 대중음악가인 것”이라며 극찬했다.

목소리와 통기타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양희은이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13세 때 아버지는 간경화로 세상을 뜨고, 당시 양희은-양희경 자매는 3년 동안 어머니와 헤어져 재혼한 아버지와 새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이후 어렵게 삶을 이어가던 양희은은 가족을 책임져야 했고,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 무대의 일부를 내 준 사람이 송창식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아침 이슬’을 듣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는 끝부분이 좋아서 취입했는데, 이를 통해 양희은은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후 ‘아침 이슬’은 저항곡으로 바뀌어 불리었고 이후 금지곡이 되는 수난을 겪는다. 그때부터 ‘아침 이슬’뿐 아니라 ‘상록수’ ‘작은 연못’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등 적잖은 노래들이 양희은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니 이미 내 노래가 아니었다. 그런 노래는 스스로 사회적 생명을 얻는다”고 평했다.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여성 가수 중 한명으로, 저항곡을 부르는 대표 가수로, 대중가요계의 대모로 불리는 양희은이지만 그녀는 ‘살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고 우연찮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셈이다.

- “무대가 두려웠고, 노래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노래의 시작이 노래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닌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성’에서 시작해서 그랬을까. 양희은은 언제나 무대를 두려워했다.

양희은은 지난 6월 데뷔 40주년 기념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 제작발표회에서 “노래로부터 도망을 다녔다. 그래서 노래만 안 하고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가 부담이라서 라디오(진행자)로 도망가서 숨었다”고 말했고, 그의 동생 양희경도 “언니의 노래 인생 40년의 시작은 본의 아니게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노래를 즐기면서 할 수 없었던 가수 양희은이었다”고 밝혔다. 이 때뿐 아니라 양희은은 종종 노래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냈었다.
지난 2004년 한 잡지는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적어 나갔다.

“그녀 나이 서른 살 때, 열아홉부터 가장 노릇을 해오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유럽여행을 했다. 그때, 품팔이로 불렀던 노래가 너무 지겨워서 그 긴 여행 내내 허밍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쉰이 넘은 지금은 노래를 즐기면서 부르고 있는가 물었다. 아직도 자신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도무지 즐기지 못한단다. 프로가 어떻게 ‘즐길’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관객을 위로하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제나 그랬듯이 ‘무서운 숙제’를 하듯 할 뿐이란다. 아니 그럼 그 고통스러운 짓을 왜 계속하느냐 했더니, 노래는 일도 놀이도 아닌 그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과분하게 쏟아 붓는 팬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채감이 있을 뿐이라고. 전 국민이 다 아는 노래 실력과 연륜에도 그녀는 한 달 공연을 위해 8개월을 연습한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공연을 위해 일 년 내내 연습하는 셈이다. 신곡이 매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밴드 멤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도 닦는 무도인 얘기 같다. 무대에 오르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지만 그 두려움이 없어지는 날엔 무대에서 내려올 것이란다.”

그녀에게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무대에 서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단다. 어떤 이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양희은이 나약해져 가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양희은은 이에 대해 “저는 두려움이 좋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겸손하게 노래할 수 있으니까”라고 응수한다.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지금의 양희은, 조금은 달라졌다. 동생 양희경도 “(1982년 시한부 선고에 이어 암 수술을 받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노래의 맛은 달라졌고 40대 후반부터는 노래를 즐기기 시작하려 노력하더라. 몸과 마음이 같이 따라준 것은 50대 중반부터이고 사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로 그 달라짐을 보증한다. 지금이, 바로 오늘이 노래를 즐기는 ‘진짜’ 양희은의 노래를 들을 수 때라는 얘기다.

- “나에게는 라디오는 편안한 고향”

양희은이 무대 공포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라는 매체 덕분이다. 첫 음반을 발매한 해 가을 CBS에서 ‘해프닝 코너’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시작 사인을 보지 못하고 몇 십초를 침묵한 채로 있다가 하루 만에 그만두게 됐다. 이후 1972년 TBC와 CBS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두 개나 진행하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MC를 맡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어려운 숙제 같은 노래로부터 피하는 공간은 언제나 라디오였다. 카메라 앞에서는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랐던 가수 양희은은 소리로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디오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또 자신의 곡들이 금지곡에 오르면서 숨어들어 간 장소였다.

가수 인생과 똑같이 라디오 진행도 40주년을 맞이한 양희은. 오늘도 진행하고 있는 MBC ‘여성시대’를 10년 이상 이끌어 온 공로로 지난 2009년 ‘브론즈 마우스’(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진행한 베테랑들의 입 모양을 떠서 만든 동상)를 수상하기도 했다.

양희은은 한 인터뷰에서 “라디오는 살아 온 인생역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저희 같은 전후세대는 마을마다 한두 집 라디오가 있는 집에 가서 ‘현해탄은 알고 있다’ ‘청실 홍실’ 같은 프로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라디오가 꿈이었다. 지난 세월을 보면 노래를 하는 양희은이, 라디오 진행을 했던 양희은 만큼의 마음을 쏟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래는 항상 부담이 컸지만, 라디오는 편안했다“고 말했다.

노래와 라디오의 두 날개를 가지고, 한국 가요계의 대모이자 대중들의 휴식처로 살아 온 양희은은 2011년, 자신의 인생을 담은 뮤지컬 도전을 통해 또 다른 영역에서 기쁨을 선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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