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女 대만서 성추행 당했는데…외교당국 나몰라라

한국女 대만서 성추행 당했는데…외교당국 나몰라라

기사승인 2011-08-18 09:23:00
[쿠키 사회] 대만을 여행하던 한국 여성이 현지 마사지 숍에서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우리 외교 당국이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수수방관하는 동안 오히려 가해자의 나라인 대만 정부가 국선 변호인을 찾아주는 등 도움을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A씨(31·여)는 지난 3월 4일 새벽 대만의 ‘용호양생관’(龍豪養生館)이라는 마사지 숍을 찾았다가 마사지사 채모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용호양생관은 대만 여행 관련 사이트에서 쉽게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관광명소다.

A씨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독이 쌓였고 뜨거운 타올로 얼굴을 가려 몸이 나른한 상황에서 채씨가 속옷을 내리고 둔부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며 “불편했지만 성추행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채씨가 속옷을 벗긴 뒤 치부를 마사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당시에는 혼란과 공포감, 수치심 등 때문에 채씨에게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에는 A씨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A씨의 피해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A씨의 마사지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 마사지 숍에 입장한데다 A씨는 커튼으로 가려진 외진 침대에서 채씨의 손길에 몸을 맡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A씨는 “마사지 숍에서 나와 차를 타고 숙소에 오기까지 내 인생에 그렇게 공포를 느꼈던 적이 없었다. 너무 무서워 조금이라도 빨리 현장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라며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야 성범죄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확신하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그는 같은 달 7일 대만을 다시 찾아가 현지 경찰에 채씨를 성추행범으로 신고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타이베이 한국대표부에서는 ‘원한다면 통역을 찾아보겠지만 그 외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해 아예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대신 대만 정부 산하 타이베이 여성센터에서 사람이 나와 제 곁을 지켜줬고, 그 곳에서 국선변호사도 선임해줬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한지 3개월여 지난 6월 중순 A씨는 검사의 법원 출두명령이 내렸다는 연락을 받고 대만으로 다시 건너 가 같은 달 29일 검사와 만났다. 그러나 첩첩산중이었다. 현지 검찰은 A씨에게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니 증인이 돼 줄 또 다른 피해자를 최소 2명 이상 확보해야 재판을 열 수 있다고 알렸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대만 검찰의 수사 의지 부족 등의 악재에다 직접 피해여성을 모아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두었다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일본의 여행 관련 사이트에는 채씨가 2007년과 2009년 미혼남 행세를 하며 수많은 일본인 여성 관광객들을 농락했다는 주장이 버젓이 오가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인 관광객 2명이 채씨를 성추행범으로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A씨는 “채씨가 일본여성들을 건드리다 문제가 커지니 이번엔 한국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다”며 “채씨는 특히 연고가 없는 외국인 여성 관광객들이 수치심과 공포, 언어장벽 등으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리는 악질 성범죄자인만큼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에 대한 채씨의 성추행은 현지에서도 보도됐다. 대만 빈과일보(?果日報)는 지난 15일 채씨가 여성 여행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채씨 가족은 빈과일보 취재진에게 “현장에 A씨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에 대해 “피해 장소에는 가해자와 저 단 둘뿐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는 성추행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변호사 선임이나 통역 등 기본적인 도움을 드렸어야 하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다”며 “앞으로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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