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겨울냄새’ 전화성 감독 “스키 달인 ‘데몬’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쿠키人터뷰] ‘겨울냄새’ 전화성 감독 “스키 달인 ‘데몬’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기사승인 2011-09-27 11:08:01

[쿠키 영화] 영화 ‘겨울냄새’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스키 기술의 개발자이자 지도 전수자인 스키 데몬스트레이터((ski demonstrator))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저예산 제작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을 한 감독도 흥행보다는 기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스키 데몬스트레이터란 스피드를 겨루는 알파인 스키와 달리, 스키 기술을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 하는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스키어를 가리킨다. 스키 데몬스트레이터들은 대부분 국가대표를 역임한 ‘스키의 달인들’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선수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난 3월 개봉한 독립영화 ‘스물아홉살’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전화성 감독(사진 가운데)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이 고된 작업을 자처했다.

“사실 지난 2007년 평창에서 열린 인터스키 대회만 해도 큰 대회에요. 동계올림픽, 월드컵 알파인 스키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스포츠로 꼽히죠. 그런데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어요. 제가 자료화면을 찾다보니, MBC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취재 온 기자가 인터 스키에 대해서 잘 몰라서 방송에 안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 이것을 정리해서, 한국 스키 발전 방향까지 짚어줘야 된다고 생각했죠. 기존의 제작사들은 이 내용이 수익성이 없으니까 제작을 하지 않더라고요. 영화가 약간 터프하게 나왔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전 감독의 경력은 독특하다. 카이스트(KAIST)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전 감독은 군무원 임용고시 출제위원, 한국무선인터넷백서 집필위원 등을 했고, 현재는 씨엔티테크(CNT TECH)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하고 있다. 씨엔티테크는 콜센터 업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한다. 특히 외식업체 콜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단기 일용직을 많이 고용했고, 이러한 경험은 청년실업문제를 다룬 독립영화 ‘스물아홉살’을 제작하게 했다. 그렇다면 ‘겨울냄새’는 어떤 연유로 제작하게 됐을까.

“저도 중학교 2학년때부터 스키를 탔지만, 사실 이 데몬스트레이터라는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어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아는 정도였죠. 그런데 스키장에서 우연히 지인의 친구라는 데몬스트레이터를 한 분 소개받았는데, 그 분이 양성철 감독이었어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삶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스키라는 것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분들이 하는 것은 생계형 스키로, 우리가 아는 레저형 스키와는 완전 다른 개념이었어요. 이들의 생계형 스키 때문에 사실 국내 스키어들이 굉장히 큰 수혜를 입고 있더라고요. 이들이 아니라면, 세계적인 스키 트렌드를 한국에 도입되기 어렵죠. 예를 들어 국내 설질(雪質)이 독특한데, 이를 세계적인 장비에 맞게 설질을 바꾸기도 하고, 연구 개발을 하죠. 또 스키 교수법도 개발하죠. 그런데 이들의 수입은 프리랜서 형태로 강사료 받는 것 이외에는 없어요. 이들이 스키 교본을 만들더라도 지원없이 다 사비로 하죠.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전 감독의 말처럼 스키 데몬스트레이터는 선진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로 평가받지만, 국내에서는 관심 밖의 존재들이다. 겨울에 강사료로 버는 돈으로 1년간의 생계를 꾸린다. 국내 대회라 하더라도 우승상금이 최대 600만 원에 불과하다. 두 대회 모두 우승하더라도 1000여만 원뿐이다.

영화는 4세기 고대 고구려 스키의 실물사진이 전시된 ‘대관령 스키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이어 2007년 평창 인터 스키 대회에서의 데몬스트레이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지난해 10월 스키 은퇴를 선언한 김준형 선수가 양성철 감독의 권유로 데몬스트레이터로 입문한 뒤 올 2월 데몬스트레이터 국제스키대회인 국제인터스키대회에서 입상하는 장면까지 담았다.

그런데 영화는 세련미보다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의 거친 느낌을 가진다. 촬영은 물론 자막까지 관객들의 몰입도를 그다지 높이지는 못한다. 영화는 보는 내내, 데몬스트레이터라는 아이템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09년 개봉한 ‘국가대표’와 같이 영화적으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했다.

“‘국가대표’는 훌륭하고 좋은 영화죠. 그러나 리얼리티로 본다면 적잖은 장면이 CG로 그려졌고, 내용도 스키인들이 봤을 때 현실적이지 않은 면들이 있어요. 그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 스키 상황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죠. 제가 다큐로 선택한 것은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우리나라 스키 상황을 알려야 된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죠. 둘째는 제가 ‘스물아홉살’을 만든 후, 이번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배급사에 의사를 타진했는데, 어렵더라고요. 저도 사업을 하다가 ‘갑’을 많이 상대해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계에서는 그게 안 통하더라고요. 그 첫째가 배급사인데, 정말 정중하게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 담당자들이 너무 쉽게 거부하더라고요. 또 뭐가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면 좋은데, 그런 연락도 없고요.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다보면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아서 그냥 제가 가진 돈만을 가지고 만들었죠.”

전 감독은 데몬스트레이터에 대해 2007년부터 자료 수집을 했다. 그때는 영화 제작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그는 영화 흥행보다는 기록과 아주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데몬스트레이터에 대해 이해하길 바랬다. 그게 ‘겨울냄새’에 대한 전 감독의 기대였다.

“영화 개봉 직후 데몬스트레이터들이 오셔서 영화를 관람했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특히 마지막에 은퇴하는 여성 데몬스트레이터와 양 감독의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치셨던 것 같아요. 자신들의 이야기니까요. 정말 이 분들이 스키에 기여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