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열풍을 넘어 광풍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사회를 바꾸려 하고 있다. 영화 ‘도가니’ 이야기다. 22일 개봉 후 7일 만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2일 개봉 이래 125만829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안에 100만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도가니’는 이미 영화 흥행의 기준으로 곧잘 제시되는 예매율, 관람객수 등과는 무관한, 핫이슈로 떠올랐다.
‘도가니’ 개봉 후 영화를 본 관객들은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5년 벌어진 이 사건은 학교장 및 관계자들이 미성년 장애우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지만, 관계자들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는 이 학교 법무법인 우석과 광주시, 교육청에 사건 재조사 요청 청원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고, 이에 누리꾼들은 호응해 4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돌파했다.
광주 인화학교의 관할 기관인 광주시 교육청은 재조사 특별팀을 구성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영화에서 교육청 관계자들이 성폭력에 대해 ‘공무원적 사고방식’으로만 수수방관했던 모습은 관객들의 질타를 받았던 장면 중 하나다.
신임 대법원장도 입을 뗐다. 27일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식 후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광주 인화학교 사건 당시) 그때 법과 양형기준으로 처리한 거라 당시에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이후에는 양형기준이 많이 올라갔고 법 자체도 바뀌었다”며 “국민이 분개하고 있는데 어떤 경로로든 해명을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영화는 검사와 판사, 변호사 모두가 한통속이 돼, 자금과 권력이 어떻게 추악하게 결탁되는지 보여줬다.
일명 ‘도가니 방지법’도 발의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광주 모 학교법인의 성폭력 사건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데 대해 “일명 ‘도가니 방지법’을 곧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 의원은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벌어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총체적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면서 “이 사건은 현재진형형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 학교로 복직했고 문제의 학교법인은 여전히 이사장의 친인척 등이 요직을 맡아 족벌경영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는 영화의 연령대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도가니’ 황동혁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가니’를 청소년들이 볼 수 있도록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 재개봉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개봉한 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된 영화로는 이례적이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사회 이슈를 담은 영화들이 보통 개봉 후 논란을 일으키지만, 이내 빨리 식었다. ‘도가니’가 일으키고 있는 이런 분위기가 한 순간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게 유도해, 영화가 갖는 힘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