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오직 그대만’ 위해 모든 걸 내놓고 희생”
“강신일·조성하·오광록 내공 덕에 군더더기 장면들 없애 감사”
[쿠키 영화] ‘가을 멜로 대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극장가에 촉촉한 사랑 영화가 드문 가운데 제목부터 정통 멜로임을 분명히 한 ‘오직 그대만’이 지난 10월 20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열흘 새 이 영화를 본 관객은 74만 명. 10월 마지막 주 박스오피스 3위의 성적을 두고 저조하다고 한다면 그에도 못 미친 영화들에게는 결례일지 모르겠으나 영화 안에 담긴 이야기의 진정성, 배우들의 에너지를 헤아리면 못내 아쉽다.
특히나 ‘오직 그대만’을 보고 나면 가슴에 품게 될 그것, 우리가 잊다 못해 잃어버리고 살고 있을지 모르는 그것의 ‘가난한’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관객 수치가 아닐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아쉬움은 안타까움이 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쫓겨 놓치고 만 소중한 것을 되찾아 줄 영화, 하지만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살기에 소중함을 알아볼 수 없는 우리. 보기만 한다면 되찾을 수 있건만 잡아야 할 기회임을 모르는 역설에서 오는 안타까움이다. 아직 전철의 문은 닫히지 않았고 버스는 떠나지 않았다.
소지섭, 한효주의 스타 이미지를 말끔히 지우고 장철민, 하정화로 거듭나게 한 송일곤 감독의 생각을 들어볼까. 곁을 스쳐가는 기회를 잡게 해 줄 행운의 티켓인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한남동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송일곤 감독을 마주했다. 무르익은 가을의 오후, 흡사 지난여름의 태양처럼 따갑게 느껴지는 햇볕에 재킷을 벗어야 했는데 어딘가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도 여전히 청년처럼 보이는 송 감독을 닮은 따사로움이었다.
“영화의 미학적 표현과 기교가 중요했던 때도 있었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큰 바람으로 삼고 있는 요즘”이라며 ‘오직 그대만’을 본 관객의 생각을 무척이나 궁금해 하는 송 감독에게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착한 스토리, 착한 편집. 일탈이나 파괴와는 거리가 먼, 온화한 내러티브를 순차적으로 배열했음에도 보는 이를 크게 울린다. 정통 멜로, 꼼수를 부리지 않은 정공법의 힘이랄까. 미용실 원장과 계단 꼬마가 터뜨려 주는 큰 웃음 두 번에 배우 박철민(장철민의 복싱 체육관 코치)이 극의 리듬에 줄곧 부여하는 생기, 소지섭이 실제 격투기 선수와 붙어 만들어낸 처절한 액션이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그 와중에도 멜로의 ‘힘’은 흔들리지 않는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편집임에도 다음 시퀀스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엉뚱한 상상으로 치닫게 한 부분도 있다. 막상 스크린 위에 그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에는 왜 저걸 생각 못했지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쉬운 걸 짐작하지 못하게 한 게 흥미로웠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철민과 정화의 감정이었어요. 그게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랐고요. 진정성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일정 수준 아래로 조절해 둬야 했어요. 그게 내러티브든 편집이든 미장센이든 철민과 정화의 감정보다 돋보여서는 안 됐던 거죠. 사실 우리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감정이 워낙 고전이어서, 19040~50년대의 순정한 감정이어서 뻔한 스토리로 비치기 십상인데요. 너무 흔해서, 촌스럽다 여겨서 간수 않다가 잃어버린 것을 영화를 보고 다시 찾으실 수 있으면 해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요. 재미있어야죠,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지 볼 맛이 나야 한달까요. 정화와 철민의 감정 라인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코미디나 액션, 다른 장르의 미덕을 좀 빌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철민의 격투기 경기를 최고 강도의 액션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액션의 순간에도 철민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특히나 웃음에 있어선 박철민 선배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코믹하되 멜로영화에서 허용될 수위의 말투를 준비해 오셨어요. 정말 영민하면서도 노력이 대단한 배우죠. 철민 선배뿐 아니라 사실 제가 강신일, 조성하, 오광록 선배 덕도 톡톡히 봤어요. 극중 존재감은 크면서도 출연 분량은 적은 배역들이어서 정말 좋은 배우 분들이어야 했어요. 짧은 등장으로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철민이나 정화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부 설명해 내야 하는 내공이 필요했거든요. 대단하신 내공들 덕에 영화 전체의 편집이 깔끔해졌어요. 그 사연들을 전부 여러 장면으로 설명해 내야 했다면 군더더기가 많아졌을 거예요.”
“아, 그 장면 예측 못하셨어요? 의도대로 되다니 다행이네요. 예를 들어 관객이 경기 장면에만 집중하셨으면 했어요. 경기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철민의 표정을 위해 격투 장면이 달려가는 거고, 우리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에 마음을 쏟기를 바랐어요. 그 다음 장면으로 뻗어가는 관객의 생각을 차단하고 싶었달까요.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이 뭐 대단히 새로운 게 아닐지라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얘기를 나누노라니 영화가 착한 게 아니라 관객을 ‘착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깨달음이 새롭다. 송일곤 감독의 ‘의도’대로 1,2,3루를 거쳐 홈인하는 모습, 결코 순응적이지 않은 관객을 순탄하게 안내해 낸 유능한 ‘목동’ 송일곤이 확인되는 자리다. 하지만 송 감독은 모든 공을 배우에게로 돌렸다.
“선배들 얘기를 먼저 했는데, 제가 운이 정말 좋은가 봐요. 진구 씨를 비롯해 일일이 열거 못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아주 작은 분량의 배우 분들까지도 너무나 제 몫, 그 이상을 해 주셨어요. 덕분에 한결 수월하고 행복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영화 첫 장면에서 소지섭을 봤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장철민을 봤다는 관객 분이 계세요.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한 말이었습니다. 그만큼 스타로서 가진 게 많고 심어진 이미지가 강해 장철민으로 분하기 어려웠을 텐데 소지섭 씨가 너무 잘해 줬어요. 정화를 위해 목숨 거는 철민이처럼 ‘오직 그대만’을 위해 모든 걸 내놓고 희생해 줬습니다. 연기 면에서도 그간 보여 주지 않았던 최고의 멜로 연기를 해 냈다고 자신합니다.”
“한효주 씨는 촬영 첫날 이미 정화가 돼서 왔더라고요. 여배우로서 민낯의 시각장애인 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선뜻 출연해 줘서 고마웠고, 갑작스레 사라진 남자를 담담하게 기다리는 그 깊은 감성을 기대 이상으로 절절히 표현해 줬어요. 감히 장담컨대, 저는 한효주 씨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획을 긋는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사는 그것, 무엇일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글자로 쓰여 지는 순간 그 치가 증발할 것만 같은 그것을 ‘오직 그대만’ 안에서 품어 보자. ‘오직 그대만’을 위한 영화가 지금 당신 곁에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