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귀엽고 곱상한 외모에 장난기 가득할 것 같은 배우 임지규. ‘최고의 사랑’에서 차승원의 매니저로, ‘역전의 여왕’에서 박시후의 비서로 등장해 발랄한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립영화로 데뷔한 그는 ‘은하해방전선’(2007)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2007) 등에 출연하며 독립영화계에서는 스타로 통했다. 이후 상업영화 ‘과속스캔들’(2008) ‘백야행’(2009) ‘화차’(2012)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오는 4월 개봉하는 영화 ‘봄, 눈’에서는 상업영화 첫 주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윤석화의 스크린 복귀작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봄, 눈’은 암에 걸린 엄마가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한다. 임지규는 엄마밖에 모르는 아들 영재로 등장해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펼친다. 병에 걸려 가족과 이별하는 과정을 담는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일면 닮았다.
영화는 김태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는다. 약 10년 전 김 감독은 암에 걸린 누나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24세 차이가 났기에 누나이자 엄마 같은 존재였고 영화로 누나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3년 전 여동생을 잃은 임지규에게 이 영화는 가족과의 이별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애틋했다.
“3년 전 동생을 먼저 보내면서 동생의 빈자리와 소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영화에서는 엄마와 이별을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재에게는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건강한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후회하지 않도록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동생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은 큰 상처를 남겼지만 잔인하게도 그런 아픔을 경험한 탓에 영화 속 영재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배우가 모든 경험을 해야 그 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생과의 이별은 영화를 찍는데 일부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곁에 있어줄 때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만약 이 작품을 동생을 잃고 난 직후에 만났다면 너무 아파서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고 이제는 웃을 수도 있게 됐어요.”
겉보기에는 평탄하고 곱게 자랐을 것 같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어릴 적 노점상을 하던 부모님은 술 문제로 많은 상처를 안겼고 가난은 삶의 희망을 빼앗아 갔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던 그는 학창시절 한 여학생을 알게 됐고 교회에 다니는 그녀를 보기 위해 매주 교회에 나가며 신앙심을 쌓았다. 현재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신앙생활을 통해 한 줄기 빛을 봤고 무작정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에는 배우가 아닌 모델을 꿈꿨다.
“수차례 오디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습니다. 카메라 앞의 저는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진 속 표정이 한결같았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나이는 드는데 해둔 것은 없고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시 26세였는데 23세라고 나이를 속이고 ‘핑거프린트’(2004)라는 단편영화 오디션을 봤습니다. 덜컥 합격했고 촬영을 마친 후 실제 제 나이를 고백했습니다. 제가 누나 형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사실은 제 동생들이었으니 스태프들도 황당해하며 재밌어하더군요.”
우연한 기회에 독립영화계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부산사투리와 유약한 이미지는 배역의 한계를 가져왔고, 연기에 소질이 없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특히 서른을 코앞에 둔 29세 때는 부담감이 더욱 컸다. 하고 싶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앞길이 보이지 않았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서른을 앞두고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데 저는 제 앞가림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부산에 돌아가 안정적인 일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갖고 있을 때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영화에 출연 제의를 받았고 그 영화 덕분에 계속 배우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은하해방전선’은 그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부일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그동안 문제시됐던 발음과 발성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배우였습니다. 연기에 대한 훈련을 받지 못했고 발음과 발성도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하며 하나씩 고쳐나가기 시작했고 다음 작품들과의 인연을 갖게 됐습니다.”
그는 여전히 배우로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외국어를 쓰는 것 같았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현재 그의 말투에서는 사투리가 잘 배어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약하고 귀여운 이미지 이면에 강하고 남성적인 모습을 담고자 노력 중이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 같은 역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남성스럽고 강한 느낌이 제게는 부족한데 그런 부분을 채워서 액션에 꼭 한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꿈꾸는 모습은 어떨까. 그는 ‘기대함이 아깝지 않은 배우’가 되기를 희망했다.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내며 대중이 갖는 기대에 120%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배우를 말했다.
“한번 연기를 했던 역을 두 번째 하면 아무래도 더 편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꾸 한 가지 캐릭터에 매몰되게 되는데, 때로는 그 길을 거부하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지규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네’라는 놀라움을 주고, 제게 기대하는 부분들을 완벽히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