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건축학개론’이 폭발적인 관심 속에 연일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축학개론’은 지난 27일 하루 전국 558개 스크린에서 8만 1272명을 모아 누적관객수 87만 7206명을 기록했다. 1996년 대학 신입생인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과 15년 뒤 다시 만난 승민과 서연의 추억 더듬기는 관객들에게 오랜만에 아련하고도 풋풋한 감정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건축학개론’은 스토리 자체로도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스토리를 생동감 넘치게 만든 것은 단연 배우들.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가 보여주는 엉뚱하고 능청스럽고 진지하고 풋풋한 감정들은 ‘건축학개론’의 장면 하나하나를 모두 화면 밖으로 내보내, 관객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했다. ‘건축학개론’ 홍보 이외에도 드라마, 영화, 가수 활동 등으로 바쁜 이들 네 명 중 22일 만난 한가인과 그 스며든 몇몇 장면들에 대해 다시 추억해봤다. (스포일러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음. 영화를 본 이들에게 읽기를 권함)
<장면 첫 번째> 서연은 왜 승민을 찾아갔을까.
대학때 서로 좋아했지만, 말을 못했던 사이였던 승민과 서연. 오해로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고, 15년 뒤 서연은 승민을 찾아간다. 승민의 직장에서 재회한 두 사람. 서연을 일순간 기억 못하는 승민. 서연은 왜 승민을 찾아갔으며, 승민은 왜 서연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서연의 상황이면 찾아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남자는 내가 잘되면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첫사랑을 찾아가지만,, 여자는 잘되면 첫사랑 생각이 안 나고, 조금 힘들고 위로받고 싶으면 찾아갈 것 같거든요. 그는 나를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지 말 안해도 알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위로를 받고 싶으니까요. 서연은 이혼을 기다리는 시점이었잖아요, 그래서 승민이가 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핑계거리로 삼고 간거죠. 뭘 흔들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장면 두 번째> 승민의 연인 은채의 등장 그리고 서연
서연은 승민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려 한다. 꽤 괜찮은 와인바에서 둘이 만나는 줄 알았지만, 승민은 회사 동료인 은채(고준희)와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연은 은채가 승민의 애인이자,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인바에서 두 사람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그 장면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미안한 감정이 들지 몰랐어요. 그냥 가볍게 나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려고 나간 장소잖아요. 그런데 둘이 들어오는데 차마 못보겠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돌싱과 비슷한 처지잖아요. 잘린 대사이긴 한데, 대사 중에 ‘내가 미쳤지, 내가 미친 년이지’라는 대사가 있는데, 정말 그 생각이 쑥 지나가더라고요. 두 사람에게 끼인 것에 대한 미안함, 승민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아니가라는 미안함이죠. 실제로 태웅 오빠도 눈도 못 쳐다보고 이상해 하더라고요. ‘내 여자친구야’라고 말하며 쿨하게 넘어가야 하는데, 힘들게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승민이 뭔 죄를 지은 것은 아닌데, 왜 서연을 못봐’라고 할 정도였어요. NG가 엄청 났죠. 저희도 촬영하면서 의외였던 장면이었어요.”
<장면 세 번째> 자는 승민을 바라보는 서연
거의 다 집이 완공되는 즈음 승민은 옥상에서 잠이 들고 만다. 집 완공시기와 은채와의 결혼식을 맞추기 위해, 숙식을 공사 현장에서 해결했기 때문. 햇볕 좋은 따뜻한 옥상을 올라간 서연은 승민의 자는 모습을 발견하고 옆에 눕는다. 관객으로서는 승민에 대한 서연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너무 혼란스럽죠. 아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첫 사랑이라는 존재가 위험한 것이, 흔들릴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잖아요. 게다가 마무리가 안되고 헤어진 상황이고, 내가 너무 좋아했잖아요. 그런데 다시 나타났을 때, 어떤 아픈 면이 있으면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장면 네 번째> 승민과 서연의 키스 그리고…
집이 완성되고 승민과 서연은 마지막으로 같이 자리한다. 그 자리에서 승민은 서연에게 묻는다. 왜 자신을 찾아왔냐고. 이에 서연은 가슴 속 담아두었던 말을 건넸다. 그리고 두 사람의 키스. 영화의 정점을 찍는 장면이다.
“키스의 강도에 대해서 감독님과 심재명 대표님, 그리고 태웅 오빠와 제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태웅 오빠는 더 찐하게 해야된다고 말했죠. 둘이 어쨌든 이제는 성인이고 살아온 시간이 있는데, 소년 소녀같은 느낌의 키스는 아니라는 것이죠. 심 대표님도 태웅 오빠 손을 들어줬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첫키스를 하던 서연과 승민의 느낌으로 가야지, 더 가면 안된다고 하셨어요. 왜 개인(엄태웅)의 욕심으로 장면을 망치냐고요. 어쨌든 그 장면을 통해서도 서로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 거죠.”
<장면 다섯 번째> 서연, 결국 남게 되다
서로의 잊혀진 감정을 확인한 둘이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승민은 예정대로 은채와 미국으로 가게 되고, 서연은 제주도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서연 앞에 도착한 ‘전람회 1집’ CD와 CD플레이어. 혼자 남은 서연이지만, 영화가 시작될 때, 그리고 중간 중간 신경질적인 면을 보이던 서연은 아니다.
“외롭죠. 남은 서연이 슬프지 않게 보이는 것이 엔딩의 포인트였지만, 어쨌든 둘이 떠났고, 저는 혼자 남았잖아요. 씁쓸하네요.(웃음) 승민에게 까칠하게 대해도, 깊은 상처가 있었고 치유가 필요했던 서연이 집도 짓고 추억도 하고 마무리 되지 않은 감정을 마무리하면서 치유가 된 것 같아요. 인생을 리셋하면서 으쌰으싸하는 힘을 받은 것 같고요. 만약 둘이 잘 되도 이상했을 것 같고, 끝까지 잘될 것 같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