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리뷰] ‘인류멸망 보고서’ 인류에 던지는 유머러스한 경고

[쿠키 리뷰] ‘인류멸망 보고서’ 인류에 던지는 유머러스한 경고

기사승인 2012-04-06 13:26:01

[쿠키 영화] 지금 당장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는 몇 개나 될까. 휴대폰의 발전으로 기억하는 전화번호의 수는 점점 줄어간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는 많은 기억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인류의 뇌 발전은 컴퓨터 탄생 후 멈췄다’는 말을 하지만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영화 ‘인류멸망 보고서’는 멸망의 징후를 세 가지로 나눠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인류멸망 보고서’는 인류멸망이라는 주제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로 김지운 감독이 ‘천상의 피조물’을 임필성 감독이 ‘멋진 신세계’ ‘해피 버스데이’의 메가폰을 잡았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6년 전에 기획·제작됐지만 제작비 지원 등 여러 문제로 이제 서야 관객과 만나게 됐다. 덕분에 김규리, 김강우, 고준희 등 스타들의 6년 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게 다가온다. 한편, 송새벽·진지희 등이 출연하는 ‘해피 버스데이’는 두 작품과 달리 최근에 제작돼 간극을 좁혔다.

영화는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시작은 핵전쟁, 쓰나미 같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완치약이 존재하지 않는 감기라든지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실수 때문에 비롯된 재앙일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또 인류멸망의 여러 징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류멸망’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운 영화다.

첫 번째 징후는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다. 윤석우(류승범)는 소개팅 약속 때문에 가축사료로 가공될 음식물 쓰레기통에 먹지 못할 쓰레기를 섞어 버린다. 이후 인간들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공격본능밖에 남지 않은 좀비로 변해간다. 이는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의 문제를 연상시키며 섬뜩한 경고를 보여준다.

류승범은 자기도 모르게 인류멸망의 도화선이 되는 괴바이러스의 최초 감염자로 등장하며 고준희는 소개팅 파트너인 류승범과의 애정 행각 때문에 멸망 바이러스에 최초로 감염되는 퀸카 여대생으로 분한다. 좀비로 변해가는 둘의 모습과 혼란을 맞는 사람들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두 번째 징후는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로 인간의 필요해 의해 만들어진 로봇 인명이 존재의 근원과 의미에 대해 스스로 묻고 깨닫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깨달음을 얻은 피조물은 창조주인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기계에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인간이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심원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극 중 로봇은 묻는다. ‘나는 무엇입니까?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과연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로봇의 목소리는 박해일이 맡았으며 그를 추종하는 해주보살은 김규리가, 로봇 엔지니어 박도원은 김강우가 연기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임필성 감독의 ‘해피 버스데이’다. 박민서(진지희)는 당구광인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숴버린 뒤 정체불명 사이트에 접속해 당구공을 주문한다. 이후 당구공 모양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고 민서네 가족은 삼촌(송새벽)이 만든 지하 방공호로 대피한다. 7년이 지난 후 가족은 다시 밖으로 나와 지구 재건의 주역이 된다.

다소 황당한 설정에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멸망’이라는 공포 속에서도 살아남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줄기 희망을 전한다.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지구 멸망 전에 사야 한다. 멸망 후에 사면 늦는다. 마감 임박이다’라며 방공호를 판매하는 쇼핑호스트의 모습과 뒤늦게 상대의 양다리를 폭로하는 뉴스앵커의 유머러스한 상황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마음 한편을 씁쓸하게 한다. 오타쿠 삼촌으로 등장하는 송새벽의 맛깔나는 연기가 눈에 띄며 어른이 된 민서로 등장하는 배두나도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게 돼 반갑다.

영화는 여러 경고성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마치 캠페인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독창적인 소재와 표현법으로 소소한 웃음을 전하지만 ‘재미’보다는 ‘의미’를 추구하는 영화인 듯하다. 로봇 인명의 목소리 연기를 펼친 박해일을 포함해 류승범, 김규리, 고준희 등의 배우 외에도 봉준호 감독, 윤제문, 김무열, 조윤희, 류승수, 이영은 등이 깜짝 출연해 볼거리를 풍성하게 한다. 오는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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