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훤칠한 키에 오뚝한 코, 조인성의 강렬함과 박해일의 순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빛은 예쁘장하면서도 남성적인 그의 이중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한때 ‘리틀 조인성’ 혹은 ‘독립영화계의 현빈’ ‘스크린 닉쿤’이라는 애칭을 부여받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연기 색깔과 매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충무로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던 이제훈(28)은 올해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패션왕’으로 또다시 바쁜 상반기를 보냈다. 어제는 충무로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던 그가 이제는 드라마에까지 보폭을 넓히며 다양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영화 ‘파수꾼’을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그는 신하균, 고수 주연의 ‘고지전’에서 어린 나이에 악어중대 중대장이 된 대위 신영일 역을 맡아 강렬한 캐릭터 연기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무서울 정도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유수의 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휩쓸며 ‘괴물 신인’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영화 ‘건축학개론’과 ‘점쟁이들’을 동시에 촬영하느라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던 그가 드라마를 차기작으로 정한 것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는 “드라마 하기 전에는 제일 걱정됐던 것이 바로 체력이었다”라며 “짜임새 있고 깊이 있는 대본 만들기 위해서는 늦어지는 공산이 크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실시간 반응이 너무 놀라웠어요. 연기할 때 힘이 된 것 같고 참 행복한 순간이구나 싶었죠.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도 있지만, 관심을 보여준다는 자체가 감사했어요. (비판의 글들이) 심적으로 크게 부담이나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도 감독님이 크게 신뢰했기 때문이었죠. 처음 1~4회 방송 마치고는 ‘갈 길이 멀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막바지가 되니까 ‘왜 이렇게 빨리 끝나지’ 싶었어요.”
드라마 주연은 ‘패션왕’이 처음이다. 그가 데뷔 초기 찍었던 영화 ‘파수꾼’을 보고 이관희프로덕션에서 그에게 드라마 제의를 했고, 한 차례 작품이 무산됐다가 제작된 드라마가 ‘패션왕’이다. 그는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를 때 제의해 주신 것에 놀랐고 감사했다”며 “젊은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드라마가 좋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제훈은 ‘패션왕’에서 패션계 굴지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가 후계자 정재혁을 연기했다. 유명 대학을 졸업한 까칠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드라마는 비록 큰 시청률을 얻지 못했지만,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연기 활동에 있어 큰 경험과 자산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솔직한 심정들을 가감 없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솔직하고 대담해서 시청자들께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드라마처럼 착하기만 하고 나쁘기만 한 인물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니까요. 일로도 성공하고 싶고 사랑도 쟁취하고 싶고 얽히고 설킨 감정들. ‘나는 100%가 좋다’고 하기 애매한 우리의 인생을 말한 것 같아요. 친절하지 않은 드라마였던 것 같지만 그만큼 시청자에게 그리고 배우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2003년부터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연기학원을 다니다 아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하며 진로를 바꿨다. 연극과 독립영화에서 기량을 닦던 가는 우연히 영화 ‘약탈자들’에서 주인공 상태(김태훈)의 아역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친구사이?’와 ‘파수꾼’ ‘고지전’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지난해 청룡영화상과 영화평론가협회상, 대종상, 부일영화상 등에서 신인남우상을 독식했다.
오는 9월에는 영화 ‘점쟁이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국 팔도에서 엄선된 초인적 능력의 소유자들이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코믹 호러 영화인만큼 무게감 있던 전작들보다 즐겁고 유쾌하다.
“주인공이라고 해서 혼자 영화를 이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김수로 선배님, 강예원 선배, 든든한 선배님들과 같이 하고 있으니까요. 시작 전엔 부담감이 더 클 줄 알았는데, 요즘 촬영장 가는 게 너무 즐거워요. 시나리오를 충분히 읽고 분석을 한 후 촬영에 임했는데, 제가 준비한 계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와서 신이나요. 모두 감독님과 선배님들의 힘이죠.”
이제훈은 그동안 게이(‘친구사이?’)나 학교 ‘일진’(‘파수꾼’), 나이 어린 대위(‘고지전’) 등 매우 강렬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 왔다. ‘점쟁이들’에서는 천재다. 뛰어난 두뇌에 매력적 모습까진 지닌 점쟁이 ‘석현’이 그가 맡은 배역이다. 번번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일까.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은 어쩌면 연기하기 편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도대체 이 캐릭터는 스크린 위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는 배역에 눈길이 더 가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거죠, 이렇게 그려질까? 저렇게 그려질까? 생각하면서 자꾸 그 배역과 가까워지는 거예요. 그러다 출연이 확정되면 감독님과 함께 의논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요.”
누구나 연기자로서 혹평이나 상처가 되는 말을 듣기 마련이지만 이제훈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모니터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용기 내 보고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통에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평생 연기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으로 제 모습을 화면으로 봤을 때의 충격이 생생해요. 내 얼굴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목소리가 저랬구나…. 말로 형언할 수 없이 기분이 이상했는데, 정말 충격이 컸어요. 사실은 되게 멋있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때가 위기라면 위기였죠. 그런데 다행히 조금씩 극복이 되더라고요, ‘그래, 난 원래 저렇게 생겼어’라고 인정한 거죠(웃음).”
스크린을 넘어 브라운관까지 젊은 남자배우 기근이 계속됐기에 이제훈에게 쏟아지는 주목과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남다른 근성과 신인답지 않은 몰입으로 일찌감치 감독들의 눈도장을 받은 이제훈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까닭이다. 출연작들의 잇따른 호평과 수많은 트로피가 우쭐하게 만들 수도 있건만 이제훈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앞으로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겸손한 배우다.
“배우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 꿈과 행복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봤을 때 최소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그보다 불행한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이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여 드리는 제 연기가 때로는 감동으로, 기쁨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네요. 늘 기대가 되는 배우로 더 성장하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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