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Style] 프리사이즈?…‘너무 이상한’ 한국 여성복 사이즈

[Ki-Z Style] 프리사이즈?…‘너무 이상한’ 한국 여성복 사이즈

기사승인 2012-10-13 13:01:01

[쿠키 문화] ‘프리사이즈’. 아주 익숙한 단어다. 언젠가부터 의류시장에 등장한 이 단어. 실제로 당장 코앞의 백화점 여성복 브랜드 매장에만 가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요?” “고객님, 그 옷은 프리사이즈로 나와 있어서 편하게 입을 수 있으세요.”

이상한 단어다. ‘프리’란다. 누구나 자유롭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사이즈라 함은, 어떤 사이즈를 말하는 걸까. 아주 작은 몸집의 여성부터 고도 비만 여성까지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옷이 있다면 그 옷을 개발한 개발자는 백화점 판매율에 앞서 노벨상부터 받아야 할 것이다. 기준이 없는 이 이상한 단어는, 처음에는 인터넷 쇼핑몰들이 시작이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자유로운 사이즈라는 이 단어는 인터넷 쇼핑몰에 정확한 기준 없이 ‘마법의 단어’로 군림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백화점이며 유수의 브랜드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희한한 일이다. 기준이 없는 단어가 기준이 되다니.

44, 55, 66. 옷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들으면 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숫자들이다. 다름 아닌 여성복 표준 사이즈 기준숫자. 이 숫자들은 1980년 한국 공업진흥청이 여성복의 사이즈를 산업화된 기준으로 정비하며 생겨난 수치들이다. 다름 아닌 144cm/155cm/166cm의 신장을 가진 여성들의 평균 신체 사이즈를 나타낸 것. 30년 전에 생겨난 이 정비표가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는 것만 해도 기함할 노릇이지만, 이 수치에서마저
정형화된 기준 따위는 요만큼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브랜드마다 44 사이즈의 클래식 테일러드 칼라 재킷 어깨 길이가 전부 다른 것이다.

처음 이를 커버하기 위해 생겨난 단어가 ‘프리사이즈’ 였다. 신축성 강한 저지 소재의 티셔츠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벌룬 실루엣, 박스 티셔츠 등은 아주 마른 사람부터 살집 있는 사람까지 많은 사이즈를 커버할 수 있다. 이러한 옷들의 사이즈를 편하게 표기하다 보니 나타난 것이 44부터 66까지를 커버할 수 있는 ‘프리 사이즈’라는 것. 그러나 이는 점점 변질되어, 이제는 타이트하기 그지없는 면 셔츠, 혹은 몸에 딱 붙게 재단된 바디컨셔스(body conscious)실루엣 재킷까지도 정확한 사이즈 표기 없이 단순히 ‘프리사이즈’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노릇이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무책임한 단어인 ‘프리사이즈’는 심지어 여성들로 하여금 무책임한 소비를 하게 하는가 하면, 상실감을 안기고 나아가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게도 한다.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옷장을 한 번 쳐다보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사이즈의 옷을 별 생각 없이 구입했다가 입어 보지도 못하고 옷장에 몇 년을 처박은 후, 이사를 갈 때쯤 꺼내 보고 아까워하며 결국은 쓰레기만 늘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정확한 계량과 기준이 필요하다. 이제 지나치게 커진 의류 시장은 더 이상 80년대처럼, 지금은 중소기업청에 통폐합된 공업진흥청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기준을 따르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브랜드 자신들이 생산하는 의류에 대한 정확한 수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모두가 완벽하게 똑같은 수치를 가질 수 없기에 ‘평균’ 수치라는 것이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평균 수치조차 너무나 들쭉날쭉하다. 평균 수치를 제안하기가 어렵다면 자신들이 판매하는 옷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소비자들이 누구나 볼 수 있게 표시해야 한다. 그것이 구입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생산자의 예의이며 배려다.

소비자 또한 의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수많은 브랜드에서 제시한 기준 없는 조견표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맞지도 않는 옷에 억지로 ‘나는 44 사이즈야’ 혹은 ‘55사이즈야’ 라며 몸을 들이 맞추는 것 보다는 정확한 자신의 사이즈를 알고 현명한 쇼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바뀌는 계절, 가을 옷을 사러 나가기 전에 집 근처 문구점에서 줄자라도 먼저 하나 구입해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사진제공=워터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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