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풍속도첩 미스터리 이번에 풀릴까… 모사본 확인

단원 풍속도첩 미스터리 이번에 풀릴까… 모사본 확인

기사승인 2012-10-26 13:59:00

국민일보, 미국 국립박물관이 수집한 ‘한진우 모사본’ 리스트 첫 입수

[쿠키 문화] 국민일보, 미국 국립박물관이 수집한 ‘한진우 모사본’ 리스트 첫 입수

조선 후기 화원화가 김홍도(1745∼1806?)의 풍속화 25점으로 꾸며진 ‘단원 풍속도첩’(보물 527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위논란의 진실은 무엇일까. 1918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가 구입한 이 화첩은 전체 그림 가운데 13점에 ‘김홍도인’이라고 찍힌 인장에 근거해 김홍도 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장은 김홍도 진적(확실한 작품)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화첩 속 화풍이 균일하지 않고 수준 또한 균질하지 않아서 일부 가짜설, 몇 사람이 함께 그렸다는 공동작업설, 후대에 베꼈다는 교본설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1883년부터 2년간 조선에 체류하면서 김홍도 풍속도첩 모사본을 수집해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박물관에 제공한 미 해군 무관 존 B. 버나도(John B. Bernadou·한국명 반어도·1859∼1908)의 컬렉션 리스트를 국민일보가 처음 확인했다. 이는 단원 풍속도첩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보인다.

# 컬렉션 리스트는 어떤 자료인가

역사연구가 박종평씨가 입수한 ‘버나도 컬렉션 리스트’는 스미소니언 국립박물관 소속 민속학자 월터 휴(Walter Hough)가 1893년 작성한 총 867쪽 분량의 ‘미 국립박물관 소장 버나도·알렌·조이 코리안 컬렉션’ 자료다. 휴는 1891년 미 국립박물관 보고서를 토대로 이를 작성했다.

버나도는 스미소니언으로부터 한국 민속자료 수집 의뢰를 받은 해군 중위이다. 당시 조선 개화파 윤치호 소개로 고종을 알현하기도 했다. ‘버나도·알렌·조이’ 명의의 피에르 루이스 조이(Pierre Louis Jouy)는 스미소니언 소속 조류학자, 호레이스 N. 알렌(Horace.N.Allen)은 의료 선교사이다.

버나도 컬렉션 중 단원 풍속도첩 관련 부분은 471∼478쪽이다. 보고서 자료는 풍속도첩 모사본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버나도) 컬렉션 중 좋은 것으로 대담한 스케치, 분방한 묘사, 해학미 넘치는 캐리커처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모사한 작가는 ‘한진우(Han-jin-o)’로 돼 있다. 그러면서 모사본 풍속화를 번호를 붙여가며 차례로 재료와 작품 특징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단원 풍속도첩 속 ‘서당’을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엔 “묵화. 선생님과 학생들. 소년들이 공부하고 있고 한 명은 암송하기 위해 등을 선생님에게 돌린 채 책을 엎어 놓고 있는데, 책은 그의 등 뒤에 있다. 23번.”이라고 적혀 있다.

한진우 모사본은 군선도 2점과 풍속화 26점 등 총 28점으로 구성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 풍속도첩이 풍속화 25점으로 구성된 것과 다르다. 군선도 2점은 원래 단원 풍속화첩에 장정돼 있었으나 1957년 미국 전시를 가면서 따로 떼 족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진우 모사본은 단원 풍속도첩보다 그림 1점이 더 많은 걸 제외하면 ‘자리짜기’ ‘기와이기’ ‘신행’ ‘씨름’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 풍속도첩과 내용이 일치한다.

# 리스트가 맞다면… 세 가지 미스터리

①‘단원 풍속도첩’은 25점이 아니라 26점?=풍속도첩을 베낀 한진우 모사본이 26점 풍속화로 구성돼 있는 만큼, 단원 풍속도첩 속 풍속화도 26점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여러 소장자를 거치는 과정에서 1점이 누락됐을 수 있다.

②한진우는 누구이고 왜 모사했을까?=정조 때 꽃핀 풍속화는 철종 시기에 이르면 인기가 시들해진다. 풍속화 부활을 이끈 건 서양인들이다.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조선 풍속에 대한 서양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구한말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번역한 ‘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김준근의 그림은 수출화로 인기가 높았다.

한진우는 학계에선 미궁의 인물이다. 다만, 스미소니언 소장품에 한진우가 그린 ‘화조도’(1885년 이전)가 있다. ‘한진우(韓鎭宇)’라는 한자 이름을 새긴 인장도 찍혀 있다. 김준근 연구 박사논문을 쓴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선영씨는 “한진우 역시 김준근과 마찬가지로 (서양인의 수요에 부응해)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에 중점을 두고 작업한 시중화가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③사라진 1점은?… 진위 풀릴 수 있나=풍속도첩에서 빠진 풍속화는 전체 시리즈 28점 중 17번 작품이다. 한진우 모사본 자료에는 “묵화. 길가에서 쉬고 있는 일꾼들. 담배를 피고 잡담을 하고 있음” 이라고 설명돼 있다.

모사본 17번과 관련, 국립중앙박물관 이원복 학예연구실장은 “김홍도와 함께 활동했던 후배 도화서 화원 김득신(1754∼1822)이나 앞선 세대인 조영석(1686∼1761)의 그림에 비슷한 도상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 회화사 연구자인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아버지는 담뱃대를 물고 아들은 짚신을 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김득신의 ‘성하직구(한여름 짚신짜기)’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 진위논란… 어느 주장에 힘 실릴까

①공동작업설=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단원 풍속도첩은 다수가 참여해 제작했을 것이라는 게 고미술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국립박물관 이원복 실장은 “1명의 필치가 아닌 것 같다. 김득신의 필치도 많이 보이는데 특히 신선도의 경우는 뚜렷하다”고 했다. 동시대 후배 화가 김득신 등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고미술계의 거두인 고(故) 최순우, 이동주 선생 등도 사석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홍도 진짜 작품이 대다수를 이룬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②후대교본설=강관식 교수는 최근 학회에서 “김홍도 대표작으로 알고 있는 단원 풍속도첩은 한 점도 단원이 그린 게 아니다. 정조 이후 풍속화가 인기를 끌자 도화서 화원들이 교본으로 삼기 위해 김홍도와 김득신의 그림 중 명품 풍속도를 베껴 그린 것”이라는 파격적 분석을 내놓았다. ‘서당’ ‘씨름’ ‘무동’ 등의 풍속화첩 대표작에서 팔과 다리를 혼동하고, 왼손 오른손을 바꿔 그리는 치명적 실수가 나타나는데, 이는 베껴 그린 모본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강 교수는 김홍도 풍속화 도상을 김득신 필법으로 그린 것이 있는 등 여러 도상과 필치가 들쭉날쭉 섞여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에 나온 한진우 모사본 리스트 자료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원복 실장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 단원의 진적으로 볼 수 있는 탁월한 작품들이 섞여 있는 만큼 신중을 요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김상기 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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