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구입 예산 깎는 MB정부… “28억8000만원의 눈물”

유물구입 예산 깎는 MB정부… “28억8000만원의 눈물”

기사승인 2012-11-16 23:30:00

[쿠키 문화] 만추의 주말을 아취 있게 보내고 싶다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볼 것을 권한다. 귀한 유물을 무료 혹은 저렴한 입장료만 내고 감상할 수 있는데다 넓은 정원에 펼쳐진 붉은 단풍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그림이다. 그야말로 도심 속 은일(隱逸)의 공간이다.

내달 16일까지 열리는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을 ‘강추’한다. 국보 18점, 보물 11점에 일본 중요문화재 2점까지 포함, 350여점의 최상급 청자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지난 10월 중순 전시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가진 언론 공개회에는 많은 기자들이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순수 유물 구입에 한 해 얼마를 쓰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에 다들 놀랐다. “28억8000만원입니다.” 수치가 갖는 의미가 얼핏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두 달 전 미술품 경매에서 1000원짜리 지폐 도안 그림인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사진)’가 실려서 유명한 서화첩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보물 제585호)’이 34억원에 낙찰된 사실을 상기해보라.

“정부에서 1년 동안 유물을 구입하는 데 쓰라고 나눠준 돈으로는 제대로 된 지정문화재 하나 사기가 쉽지 않아요.” 박물관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그나마 서화든 도자기든 달랑 한 점 샀다가는 국정감사에서 지적당할 수 있어 적은 예산을 또 쪼개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이게 우리나라 간판 국립박물관이 처한 현실이다.

외국과 비교하는 건 부끄러울 정도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경우 2010년 관련 예산이 355억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12배다. 유물구입 예산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계속 깎였다. 2007년 46억원에서 매년 줄어 2011년에는 28억8000만원으로 내려앉았다.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정책적으로 전통 문화를 홀대하는 정부지만 2010년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상 만찬을 가졌다. 적절성 논란은 차치하고, 이 에피소드야말로 현 정부가 이곳을 밥 먹는 장소로 선택할 만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외국에 자랑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에 채울 콘텐츠에 돈을 쓰는 데는 관심 없었지만 말이다.

유물 구입 예산을 늘리자고 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 복지’라는 게 있다.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에는 이중섭(1916∼1956)의 대표작 ‘게와 아이들’의 모티브가 됐다는 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 고려청자 주전자도 나왔다. 포도 넝쿨에 매달린 동자들의 앙증 맞은 표정이 매력적인 명품이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떠나간 후 박물관에 와서 이 청자를 감상하곤 하면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공공 전시는 이처럼 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높여 또 다른 문화적 힘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유물은 국가 파워이기도 하다. 내년 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선 ‘미국미술 300년 전’이 열린다. 전후 추상표현주의 대가 잭슨 폴록과 1960년대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 등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의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무더기로 온다. 작품가격들이 천문학적이라서 박물관 측이 벌써부터 보안을 걱정할 정도다. 이런 게 문화의 전파이며 국력의 과시이다.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 스타가 된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나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만으로 정부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선 유물이나 미술품 구입에 돈을 쓸 줄 아는 문화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국민일보 문화생활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김철오 기자
yosohn@kmib.co.kr
김철오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