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아이를 죽인 거 아냐?”… 무인기 ‘드론’ 조종 미군의 폭로

“우리가 지금 아이를 죽인 거 아냐?”… 무인기 ‘드론’ 조종 미군의 폭로

기사승인 2013-01-11 20:41:01


[쿠키 지구촌] 학급에서 1등으로 고교를 졸업한 그는 군인이 됐다. 그의 일터는 미국 뉴멕시코주의 캐넌 공군기지. 임무는 무인비행체 즉 드론(drone)을 조종하는 파일럿이었다.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국제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무인비행체 드론 조종 임무를 5년간 맡아오다 전역한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브랜든 브라이언트의 사무실은 컨테이너 형태의 직사각형에 창문 없이 밀폐된 작은 방이었다. 사무실의 온도는 늘 섭씨 17도에 맞춰져 있다. 14대의 대형 모니터와 복잡한 기계는 실제 전투기의 조종석과 똑같이 꾸며져 있었다. 조종석에 앉은 2명의 ‘파일럿’이 뉴멕시코의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버튼을 누르면, 지구 반대편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어느 곳에서 누군가가 죽어 나갔다.

브라이언트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날은 1만㎞ 이상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하늘로 자신이 조종하는 드론이 날아갔다. 뉴멕시코 사무실의 모니터에 진흙으로 만든 납작한 지붕이 나타났다.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2∼5초 간격으로 전송해온 현장 사진이었다.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그는 지붕에 초점을 맞춘 뒤 버튼을 눌렀다. 16초 뒤면 드론에 장착된 헬파이어 미사일이 저 지붕 위로 날아갈 것이다.

“미사일 발사 7초 전까지도 분명 그 지붕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라도 취소 버튼을 누르면 미사일 폭격을 막을 수 있었어요.”

발사 3초 전, 모니터의 한쪽 귀퉁이에서 아이가 걸어 나왔다. 0초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이 브라이언트에게는 마치 슬로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화면에는 먼지가 피어올랐다. 집은 무너졌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속이 메스꺼웠다.

“우리가 지금 꼬마 애를 죽인 거 아냐?” 옆자리 동료에게 물었다.

“맞아, 꼬마였던 것 같아.” 동료가 대답했다.

브라이언트는 모니터 화면의 채팅창에 글씨를 써 넣었다.

“아이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화면으로 대답했다. 이 세상 어딘가의 작전 사령부에서 그들의 ‘비행’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강아지였다.”

브라이언트와 동료는 폭격 화면을 다시 돌려 보았다. 아프간에는 강아지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걸까.

브라이언트가 컨테이너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자 미국 남서부의 광활한 대지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졌다. 캐넌 공군기지의 레이더탑에선 몇 초에 한 번씩 불빛이 반짝였다. 어디에서도 전쟁의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브라이언트의 전쟁은 마치 잠깐 동안의 TV쇼나 비디오게임처럼 진행됐다. 브라이언트와 같은 임무를 맡은 파일럿들은 캐넌기지뿐 아니라 네바다의 크리치 공군기지, 동부 아프리카 지부티의 캠프 르모니어 등 지구 곳곳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에어포스(air force·공군)가 아니라 체어포스(chair force·의자에 앉아 비행체를 조종한다는 자조적인 표현)라고 부른다.

최근 9년간 드론의 숫자는 13배 늘었고 매년 50억 달러씩 관련 예산이 늘어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파키스탄에 위치한 드론 발진 기지에서는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40일에 1회꼴로 드론이 이륙하는 장면이 목격됐지만 이제는 사흘에 1회 이상 드론이 출격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부티의 드론 기지에서는 하루에 16회 출격이 이뤄지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드론 사용은 급증했다. 대테러 전쟁의 전략이 지상 전면전에서 외과수술처럼 정확한 표적 제거 작전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 전환을 밀어붙인 인물이 바로 지난 7일 미 중앙정보부(CIA) 국장에 지명된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국토안보부 보좌관이다. 그는 오바마의 굳건한 신임을 받으면서 대테러 작전을 사실상 총지휘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백악관에서 드론 공격 목표를 결정하는 회의를 그가 주재한다. 그가 선택한 타깃 명단을 오바마가 결재하면 즉시 시행된다. 드론 공격의 최상급 지휘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바로 옆인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CIA 본부다. 브라이언트와 같은 체어포스 파일럿은 바로 그 시행자다. 전쟁터는 지구 반대편이다. 오바마는 이런 전쟁 수행 방식이 “더 인간적”이라고 믿고 있다.

미 공군 대령 윌리엄 타트는 지난해 랭글리 CIA본부 인근의 ‘원격 조종 비행체 태스크포스(RPATF)’의 수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드론이라는 표현 대신 ‘원격 조종 비행체(Remotely Piloted Aircraft)’라는 말을 좋아한다. 드론이라는 단어는 원래 벌의 수컷,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는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타트 대령은 “아이티 지진 현장의 구호 작업에도 원격조종 비행체가 사용됐다”고 슈피겔에 밝혔다. 실제로 유엔은 최근 무인비행체를 구조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지 검토에 착수했다.

유엔은 그러나 드론 공격이 민간인 피해를 불러오고 있어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조사관 크리스토프 헤인스는 지난해 6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드론 공격 사망자 중 민간인이 최소 20%에 이른다”고 밝혔다. 테러리스트를 법정에 세우기 전에 무인기로 공격해 일방적으로 처벌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헤인스 조사관은 “드론 사용이 제네바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 국제법적인 검토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캐넌 공군기지의 브라이언트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드론 파일럿 기간 동안 “여성과 어린이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며 “차라리 내 눈이 썩어버리길 바랐다”고 말했다.

‘드론의 아버지’라 불린 존 브레넌이 CIA 국장에 취임하면 미국은 장기적으로 전투기를 글로벌호크 같은 공격용 드론으로 대체한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중국도 1인승 전투기를 개조한 공격용 드론을 이미 실전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취임 이후 글로벌호크 도입을 위해 자위대 예산을 대폭 늘렸다. 한국도 드론 개발에 착수했다.

정규군을 투입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는 데다 비행체가 소형이고 저공비행이 가능해 쉽게 발각되지 않으며, 격추된다고 해도 아군의 인명 피해는 없다는 장점 때문이다. 드론 시장규모는 현재 50억 달러에서 10년 내 94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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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fattykim@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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