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난 2월 진행된 ‘신세계’ 언론시사에서는 간담회에 참석한 영화의 주역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은 물론이고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박성웅을 포함해 남자배우들의 열연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기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임에도 개봉 열흘 만에 200만 돌파라는 흥행 성적을 가능케 한 관객의 의견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난 뒤 삼삼오오 모여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야, 그 이중구 (역할) 한 배우 세더라” “(드라마) ‘태왕사신기’ 나왔던 박성웅이잖아” “포스터에 나왔어도 되겠더라, 네 번째 주연이던데” “이야, (조직 보스 자리를 놓고 다투는 정청 역의) 황정민한테 안 밀리던데” 등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최민식은 가만있어도 어쩜 그렇게 압도적이냐, 포스가 장난 아냐” “(영화)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을 다시 보는 것 같더라. 엘리베티어 신, 길이 남을 명장면 아니냐” “완전 이정재 영화더만, 기대 이상이야. 황정민 최민식 사이에서 살아있더라”와 같은 톱스타 배우들을 향한 호평보다 열띤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건, 그만큼 박성웅이라는 배우에 대한 관객의 정보가 적었기 때문이리라.
“쏟아지는 호평? 제 위치를 잘 압니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웅에게 관객들의 호감도 상승을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박성웅은 영화 ‘신세계’에서 건설·금융 분야의 회사들을 경영하는 그룹으로 포장된 폭력조직 골드문의 보스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이중구 역을 맡았다. 석 회장(이경영)의 오른팔로서 후계자 계승의 적자임을 자부하지만, 중국에서 ‘굴러들어 온 돌’ 정청(황정민)이 석 회장의 부고를 틈타 회장 자리를 노린다. ‘목표는 하나, 보스가 되는 것’을 지표로 살아온 이중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위협, 하지만 정청에게는 이자성(이정재)이라는 든든한 동생이 뒤를 받치고 있고, 강 과장(최민식)을 비롯한 경찰도 장 부회장(최일화)을 비롯한 이사들도 이중구의 편은 아니다. 배우 박성웅은 이중구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타협을 모른 채 돌진하는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 주목 받고 있다.
“영화를 세 번 봤는데, 그 중 두 번째가 아내(배우 신은정) 손잡고 가서, 관객 분들과 함께 본 거예요. 연기 칭찬에 인색한 아내가 ‘잘했다’고 말해 줘서 기뻤고. 또 저도 들었어요, 네 번째 주연이라는 말이요. 진짜 감사하고 기분 좋더라고요.”
환하던 얼굴이 이내 진지해진다.
“아내가 늘 겸손해라, 자만하지 마라, 얘기하기도 하거니와 저는 제 위치를 잘 압니다. 제가 최민식 선배님, (황)정민이 형, 또 동갑내기 (이)정재만큼 유명했거나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기대치를 높여 놨다면 이번에 이 만큼의 호평이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열심히 했고, 잘했다는 칭찬이 왜 좋지 않겠어요. 하지만 어찌 보면 그동안 보여드린 게 없었다는 반증인 거지요. 갑작스레 쏟아지는 관심과 호평,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판에 들어온 것에 감사…박성웅의 신세계 기대”
어느새 40줄로 접어든 나이, 오랜 기다림 끝에 온 단비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더 들여다볼까.
“제가 지금 17년차예요. 사실 제 주변에, 저 대학로만 가도 저만큼 연기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렇다고 저한테 칭찬할 지점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이 판에 들어오기가 힘들어요.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 판에 들어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제가 기특합니다. 지금 중요한 건 지금의 호평에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부터가 제게는 ‘시작’입니다.”
16년 어치의 열정과 고생의 보따리가 풀렸다. 이야기가 쉴 줄을 모르고 달린다.
“일당 3만 5000원 짜리 단역으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연기 인생에 지금까지 두 번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통해 시청자 분들이 주목해 주신 게 첫 번째였어요. 그 드라마 전체에서 대역이 없는 배우는 저 하나였어요. 대역 없이 연기하다 보니 말에서 세 번 떨어지고 119에 두 번 실려 갔지만 시청자 사랑에 즐겁기만 한 시간이었어요. 뭣보다 아내를 만난 소중한 작품이고요.”
“그리고 이번 ‘신세계’인데요. 감히 현 시점 제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은 제가 맡게 된 이중구 역을 놓고 다섯 명의 후보가 있었고, 저는 솔직히 가능성 꼴찌의 배우였어요. 캐스팅 5순위인 거죠. 반대도 심했다고 들었는데,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네임 밸류도 떨어지고 뭐 하나 확신을 주는 게 없잖아요. 연출 박훈정 감독과 제작을 맡은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가 저를 고집해 주셨고, 지켜주신 것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제가 가진 걸 끌어올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어요. 결과는…, 이중구는 비록 자신의 신세계에서 살지 못했지만, 박성웅은 ‘내 인생의 신세계’로 향하는 문을 영화 ‘신세계’를 통해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정신 바짝 차려야죠. 오늘 이후가 배우 박성웅의 ‘신세계’가 되도록, 신중히 잘해 나갈 겁니다. 아내가 늘 말하는 자만하지 말라는 말에 가슴에 담고요.”
“액션스쿨 1기 출신…총기 액션에 자신”
스타배우의 대역이 아니라 중국의 이소룡, 성룡, 이연걸과 같은 무술배우의 꿈을 키운 액션스쿨 1기 출신의 박성웅. 연기가 좋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고 연극 무대로 가 발성을 닦고 볼펜을 물어 발음을 교정하며 기본기를 다졌던 20대 중후반. 그러고도 10년 이상을 드라마와 영화, 자신을 찾아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착한 역도 하고, 코미디도 했는데 워낙 배역이 크지 않아선지 그나마 기억해 주시는 게 강한 역이에요. 눈도 쪽 찢어져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고요. 그래도 (하회탈처럼 사람 좋은 눈을 하고선) 이렇게 웃으면 선해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배운데, 더 유리한 건 있겠지만 못할 건 없다고 봅니다.”
스스로 말하듯, 연기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선 그에게 차기작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미 촬영해 놓은 영화 ‘사이코메트리’도 있지만, 새로이 택하게 될 작품이 ‘박성웅의 신세계’의 실현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
“뭘 좋아한다, 뭘 하고 싶다… 제가 벌써 그런 걸 말할 때는 아닌 것 같고요. 다른 배우보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액션연기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배우가 직접 액션을 할 때 관객이 느끼는 쾌감이나 화면상의 자연스러움 등 장점이 크거든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하겠다고 말하기 위해, 전문가가 해야 작품을 위해서나 스태프들의 수고를 더는 측면에서나 좋은 부분까지 고집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발차기 하나, 점프 하나 남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총기 액션에 자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슛!
스스로를 ‘액션연기의 갑’이라고 표현해서일까.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오영지(한지민)의 오빠 강철을 맡아 생활력 강인한 북한 사람을 연기해서일까.
제작이 확정되지도 않는 영화 ‘베를린’ 2편 속에서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느 작품에서건 배우 박성웅의 밝은 미래를 향한 거침없는 ‘슛’(shoot)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