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센터’ 서장훈(39·부산 KT)의 말이다. 그는 프로농구 코트에서 15시즌 동안 전쟁을 치렀고, 마침내 전쟁터를 떠났다. 불멸의 대기록을 남긴 채 말이다. 팬들은 마지막 무대에서 33점이나 쓸어 담으며 투혼을 불사른 ‘전설’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서장훈은 19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12∼20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전주 KCC와의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날 경기에서 서장훈은 33득점(2리바운드)을 올리며 팀의 84대 79 승리를 이끌었다. 월드 스타로 떠오른 가수 ‘싸이’는 경기장을 찾아 시구를 하며 대한민국 농구사의 한 획을 그은 서장훈의 은퇴식을 빛냈다.
서장훈은 학동초등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선린중학교로 진학한 서장훈은 갑자기 콩나물처럼 키가 쑥쑥 자랐다. “너, 농구 한번 해 볼래?” 서장훈은 휘문중학교 농구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전학해 포지션을 ‘투수’에서 ‘센터’로 바꿨다. 서장훈은 휘문고등학교 2학년 때 키가 2m07에 달했다. 고교 최대어로 떠오른 서장훈은 연세대에 진학해 대학 무대를 평정했다. 그는 대학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하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8∼1999시즌 여드름투성이의 얼굴로 청주 SK(현 서울 SK)에서 데뷔한 서장훈은 서울 삼성, 전주 KCC, 인천 전자랜드, 창원 LG를 거쳐 KT에 마지막으로 둥지를 틀었다. 서장훈은 2008년 11월 19일 LG전에서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1만점을 돌파했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대표팀 센터로 뛰며 중국을 연장 접전 끝에 극적으로 따돌리고 대한민국에 20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은퇴 기로에 섰던 서장훈은 극적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아름다운 은퇴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그 바람에 왼쪽 무릎에 물이 차 쓰러진 적도 있다. 또 경기 중 두 번이나 얼굴을 다쳐 70바늘이나 꿰매기도 했다. 팬들은 서장훈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서장훈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서장훈은 688경기에 출전해 1만3231득점을 올렸다. 개인 통산 리바운드는 5235개를 잡았다. 2위와의 격차가 커서 이 기록은 오랜 기간 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장훈은 이날 은퇴 소감을 묻는 말에 “매 순간이 아쉽다.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많은 분의 기대에 부족했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이어 안티 팬들을 의식한 듯 “과도한 항의와 과격한 몸짓이 보기 불편했다면 사과드린다. 쇼가 아닌 이겨야 하는 대결에서 이기고 싶어서 그랬다는 진짜 마음만은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경기를 앞두고 다른 계획을 말하는 것은 선수의 자세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5시즌 동안 체격 좋은 외국인 선수들과 당당하게 맞섰던 ‘토종 센터’ 서장훈. 그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과 상처는 지난 영광을 얘기해 주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