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선임기자의 스몰토크] 고위층 성접대 파문과 공창(公唱)의 진화

[전정희 선임기자의 스몰토크] 고위층 성접대 파문과 공창(公唱)의 진화

기사승인 2013-03-24 15:29:00

[쿠키 문화] ‘고위층 성접대 파문’이 봄날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문의 재생산은 막을 방법이 없다. 사실(fact)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으니 점점 살이 붙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파문의 진원지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어느 건설업자의 별장이다. 유흥을 즐길 수 있게 꾸민 ‘그들만의 게토(ghetto)’였던 모양이다. 게토란 로마제국 시대 이래 유태인을 격리 수용하여 관리하던 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한데 세월이 지나면서 게토는 지저분함, 방외(方外), 주변부를 뜻하는 상징어가 됐다. 범위 밖을 벗어나려는 우리의 이중적인 심리는 서로의 묵인 하에 방외의 게토를 인정했다. 그 대표적 게토가 유곽이다.

근대적 개념의 게토는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에 일본군 2만여명이 장기주둔하게 됐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 쌍림동에 유곽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경성 일본인 거류민단이 만든 우리 땅 최초의 공창, 즉 게토였던 셈이다. 그 뒤로 ‘종3’ ‘미아리텍사스’ ‘청량리588’이란 말로 통용되며 욕망의 배설구가 되어 간다.

그 게토 안의 사람들은 방내(坊內) 사람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어 했다. 1975년작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러한 시대적 산물이다.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안식처가 게토라는 역설도 된다. ‘청소년출입금지구역’이란 안내판은 그곳이 게토임을 분명히 하는 명찰이었다.

이러한 게토는 60년대 이후 ‘도시미관’이라는 구실로 구역을 축소시켰고, 2004년 ‘성매매특별법’으로 서류상 실재가 불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게토의 ‘전통’은 쇼윈도우라는 통로를 통해 질펀하게 놀고자 하는 성인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데 70년대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우월적 게토’가 도심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쇼윈도우가 없는 폐쇄적 게토의 탄생이었다. 룸살롱으로 표현되는 ‘우월적 게토’는 자기분열을 거듭해 ‘오피스형 게토’ ‘별장형 게토’ 등으로 더욱 공고화되어 간다.

따라서 이제 경비원과 사냥개가 지키고,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색 관용차가 드나드는 게토는 더는 ‘지저분한 구역’이 아닌 곳이 됐다. 그 게토 안에선 성을 매개로 권력과 물질이 나누어지니 말이다. 게토가 이제 우리를 격리, 수용하게 됐다.

그런데 이 부조리한 현실이 좀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네티즌은 ‘화질 나쁜 동영상’을 키워드로 스토리텔링에 바쁘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는 쌍림동 ‘신마치유곽’도 아닌데 그들만의 게토는 좀처럼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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