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분 ‘공정사회’ VS 165분 ‘장고’, 하지만 체감 길이는…

75분 ‘공정사회’ VS 165분 ‘장고’, 하지만 체감 길이는…

기사승인 2013-04-02 15:43:00


[쿠키 영화]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말은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나 연출하는 감독, 출연한 배우에게 이 만큼 짭짤한 총체적 칭찬은 드물다. 말하자면 영화가 주는 재미와 만족에 따라 러닝타임이 다르게 체감된다는 얘기인 셈인데, 4월의 첫날 언론시사회를 가진 ‘공정사회’는 영화의 상대적 길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영화 시작 전, 러닝타임 75분이 눈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자의적 추측이지만 ‘감정을 늘이지 않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나?’ 긍정적으로 예상했다. 초등학생 딸이 아동성애자로부터 강간을 당해 평생 배변조차 기구에 의존하는 삶에 처하게 됐을 때, 그럼에도 경찰이나 별거 중인 남편이나 절차를 따지고 체면을 말할 때 딸의 엄마가 느낄 크나큰 고통과 분노, 절망감에 미리 압도당하는 느낌 속에서 생긴 희망의 추측이었다.

‘공정사회’가 길게 느껴지는 이유

희망은 빗나갔다. 압축과는 거리가 먼, 같은 장면의 반복적 노출이 계속됐다. 같은 상황 속에서 각 인물이 느낀 서로 다른 감정과 처한 위치의 상이함을 드러내기 위해, 일테면 영화 ‘커플즈’가 추구한 의도적 교차 편집과는 다르다. 만일 의도였다면 같은 장면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찍힌 미장센이 보이든, 시작은 같되 다른 장면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통상의 문법이다. 그렇다고 일반적 영화 길이 2시간을 채우려는 노력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영화는 이미 과감하게 75분의 러닝타임을 채택했다. 영화적 필요와 이유를 헤아릴 수 없는 채 계속되는 동일 장면의 노출은 그저 ‘공정사회’의 완성도와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반복’으로 보인다.

반복은 체감 러닝타임을 늘린다. 두 시간은 본 듯한데 불과 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당연히 장면의 반복 때문만은 아니다. ‘공정사회’는 영화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엄마의 복수를 향해 75분을 달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행위로 모녀에게 불행을 안긴 두 사람의 ‘원흉’을 단죄하는 절정, 관객 마음에 분노를 지피고 절망을 공감시켜 절정의 순간을 함께 맞이해야 하는데 차가운 복수에 마음으로 동참하는 관객이 많지 않을 듯싶다.

그러면서도 ‘영화 재미없네’,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것은 ‘공정사회’가 가진 뜨거운 문제의식, 장영남 마동석 등 재능기부를 한 배우들의 호연 때문이다. 배우들뿐 아니라 의상 등 소품과 제작 스태프들의 기부와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소중한 영화이기에 안타까움은 커진다. 연출을 맡은 이지승 감독이 순제작비 5000만원, 9회 차뿐인 촬영에 책임을 미뤄선 안 되는 이유다. 많은 이들이 선사한 호의의 가치에 더욱 책임감 있는 결과로 답하는 게 좋았다.

공교롭게도 짧지만 길게 느껴진 ‘공정사회’ 시사 뒤 본 영화가 무려 러닝타임 165분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이다. 길고, 긴 하루가 될까 염려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정사회’가 남긴 아쉬움을 날릴 만큼 쿠엔틴 타란티노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촘촘한 연출력은 유쾌한 즐거움을 안긴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 벌써 끝이야?

1960~80년대를 풍미한 서부영화 시리즈 ‘장고’를 변주한 이 영화에서 타란티노는 백인 장고를 흑인으로 바꾸고, 황금마차 시대의 서부를 남북전쟁 발발 전 노예학대가 한창인 남부로 배경을 옮겼다. 간단해 보이는 두 가지 비틀기는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생산한다. 현상범 사냥꾼인 흑인 장고가 백인을 향해 총을 날릴 때, 그것은 단지 극악무도한 현상범을 잡는 솜씨 좋은 총잡이의 명쾌한 사격을 넘어 흑인 노예를 학대한 남부 백인사회를 향한 통쾌한 역사적 보복으로 읽힌다. 쉰의 나이에도 발랄함과 유머를 잃지 않은 타란티노는 그 피의 복수마저도 유쾌한 오락으로 연출해 냈다.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도 ‘장고: 분노의 추격자’의 시간을 훌쩍 흐르게 하는 데 한몫한다. 깊이 있는 눈빛과 거스를 수 없는 카리스마로 백인들 사이에서도 당당한 흑인 장고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제이미 폭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제3의 시각, 말하자면 역사의 눈으로 남부 백인들의 노예학대를 바라보는 독일인 의사 슐츠 역의 크리스토프 왈츠 역시 칭송받아 마땅하다.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한스 대령을 맡았을 때도 독특한 억양과 말투 연기로 감동을 자아내더니, 이번에도 어려운 표현과 공식적 용어로 상대를 압도하는 지성적 사기꾼 말투로 ‘말맛 연기’의 1인자임을 과시한다.

두 사람에 비하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악랄한 백인(캔디) 연기는 매우 전형적이고 평범하다. 주인공이랄 수 없는 배역이라도 작품과 배역이 가지는 개인적, 영화적 의미를 크게 보고 출연을 결정하는 덕성이 되레 돋보인다. 원전이 되는 ‘장고’ 시리즈의 장고, 프랑코 네로가 어느 장면에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인간 개싸움과도 같은 흑인노예들의 만딩고 싸움이 끝난 뒤 장고에게 이름의 철자를 묻는 백인이 바로 네로이다.

‘벌써 2시간 45분이 지났다고?’ 생각할 만큼 흥미진진한 남부 총잡이극 ‘장고: 분노의 추격자’. 당신이 쿠엔틴 타린티노 감독의 팬이거나 독특한 영화를 즐긴다면 더욱,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말 위에 올라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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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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