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안에 2% 인플레이션 달성’이라는 목표에 대해 정권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과감한 경기부양책에 대해 과도한 정부 개입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거창한 ‘경제 재생’의 구호도 시장에는 조바심으로 비치고 있다.
4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총리도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고 처음으로 고백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일 중의원에 출석해 민주당 정권에서 경제재정상을 역임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며 인플레 목표치 달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경제는 살아있는 것”이라면서 “세계 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동안의 호기로운 모습과는 달리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인 것.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도 1일 중의원에 출석해 “내가 아는 한 어떤 나라도 디플레 타개를 위해 인플레를 유도한 적이 없다”면서 “인플레를 유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달 29일에도 “디플레 탈출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유럽 재정위기 등을 거론하며 “(국제적인) 불안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아이러니한 역할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2년 안에 2% 물가 상승을 달성하겠다”던 신임 총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자신을 임명한 아베총리가 총선 당시 내세운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공약도 커다란 부담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구로다에게 주어진 시간이 실제론 1년 남짓이라고 전망했다. 1년 안에 최소 1% 정도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시장이 더 이상 참고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3일 시작된 이틀간의 금융정책결정회의(한국 금융통화위원회 격)에서도 과감한 금융완화 방안과 장기국채 매입, 양적완화 수단의 일원화 등이 논의될 예정이지만 효과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구로다의 전임자인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총재도 파이낸셜타임스에 일본이 과거 호황 때도 2% 인플레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일본은행 출신으로 JP모건 도쿄 지사의 아다치 마사미치(足立正道)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아베노믹스가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마에하라 의원도 구로다의 인플레 목표치에 대해 “내가 볼 때는 단지 ‘치어리딩’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바 있다.
시장의 예측은 더 냉정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이뤄진 채권 투자자 조사에서 응답자의 79%가 일본의 ‘2년·2%’ 물가 목표 달성에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프레데릭 미시킨 교수는 WSJ에 일본의 위축된 소비의 원인으로 임금 하락(1997년보다도 9% 떨어진 상태)을 지적하며 “일본이 궁극적으로 2% 인플레를 달성할 수도 있겠지만, 2년 안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 취임 100일을 맞아 “2007년의 그 아베가 아니다”며 추켜세우는 분위기다. 5년 간격으로 집권 2기를 맞은 아베 총리는 이전의 ‘유약한 귀공자’ 이미지를 상당 부분 떨쳐냈다. ‘아베의 도박’으로 불리는 과감한 경제정책의 반짝효과로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높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정치 문하생으로 2006년 정치적 스승의 후임 총리에 올랐다가 그 다음해 참의원 선거 참패와 건강악화를 핑계로 석연치 않게 물러난 이후 나름대로 ‘와신상담(臥薪嘗膽)’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개헌 발의요건을 담은 헌법 96조에 손대는 것이 우선이란 입장에 변함이 없어 보인다. 유엔평화유지군 참여 확대를 위해서라도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도쿄 전범재판이 ‘승자들의 재판’이었다고 비난하는 등 잊을만하면 여과 없이 자기 주장을 드러낸다. 주변국들이 아베의 진정한 ‘권토중래(捲土重來)’가 요원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