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수 대목장 “숭례문 복구 아쉬운 점은…”

신응수 대목장 “숭례문 복구 아쉬운 점은…”

기사승인 2013-05-03 06:54:01


[쿠키 문화] “아이고, 이거 신응수 대목장 아니십니까.”

지난달 30일 오후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 숭례문 주변에 나타난 그를 보고 시민들이 아는 체를 했다. 덥석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응수(71) 대목장.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 복구에 걸린 5년3개월 동안 국가중요무형문화재 74호인 그는 목공사 총괄책임을 맡은 도편수로서 복구 작업을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에 오르내렸던 신 대목장을 알아본다는 건 그만큼 화재와 문화재 복구가 국민적 관심사였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게 추우나 더우나 몇 번의 계절을 보내며 보수한 숭례문이 위용을 뽐내며 4일 신명난 기념행사와 함께 국민 품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그의 표정은 환했다.



2008년 2월 10일 밤, 숭례문이 불탄다는 황당한 소식을 듣고 그는 인근 효자동 사무실에서 일하다 한달음에 달려왔다. 꺼진 줄 알았던 불길이 다시 타올라 2층 문루가 어이없이 주저앉은 모습에 그의 억장도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숭례문은 그에게 도편수 인생의 문을 열어준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나이 19세 때. 한옥 공사장 등에서 목수로 일했지만 일거리가 없으면 고향 충북 청원에 내려가 농사를 거들어야 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회의도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1961년 7월 해체를 시작해 3년에 걸쳐 진행된 숭례문 중수(重修)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한국 도편수의 맥을 잇고 있는 조원재(1903∼1972), 이광규(1918∼1985) 스승 밑에서 일을 배우는 행운을 얻었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 건축물. 대패질과 톱질을 하며 숭례문이 조선 초기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탰다. 그가 시작한 첫 궁궐 공사였다. 전통 건축은 못을 쓰지 않아 정확한 대패질이야말로 수명을 좌우한다는 것, 손재주만이 아니라 설계와 도면을 알아야 한다는 것, 전통 건축은 기둥인 소나무 보는 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등을 그때 배웠다.

이후 좋은 소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병원에 누워 있다가도 일어나 그곳으로 갔다. “이젠 멀리서 쌍안경으로만 봐도 1000년을 갈 재목인지 한눈에 알 수 있지요.”

숭례문 중수에서 보듯 그때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민족문화 창달 구호와 함께 각종 성역화 작업과 문화재 발굴·복원 공사가 쉼 없이 이어졌다. 강화 고려궁지, 세종대왕릉, 불국사 등 굵직한 문화재 복원 및 조성 공사에 참여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공사 현장에 꼭 다녀가면서 금일봉을 하사하곤 했지요.” 71년 시작된 불국사 복원공사 때는 현지 시찰을 한 뒤 헬기를 타고 이동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단청 색깔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다시 칠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렇게 경륜을 쌓은 그는 나중에 83년 창경궁 복원 공사에서 첫 도편수가 된 이래 경복궁 근정전 복원, 광화문 복원 등 초대형 문화재 복원 현장에 늘 함께했다. 그리고 숭례문 중수를 하면서 전통 건축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던 20대 청년이 이제 숭례문 복구공사로 두 번의 인연을 맺으며 칠순을 넘긴 것이다.

그런 사연이 있는 만큼 복구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감회는 남달랐다. 숭례문 복구는 전통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를 화재 후 국회에 구성된 숭례문복구특위에 맨 처음 제안한 이도 그였다. 이번 복구에서는 목재를 다듬을 때 내림톱이나 대자귀 같은 옛 공구를 사용했고, 일일이 기와를 손으로 구웠다. 현장에 대장간을 설치해 못과 철물을 직접 만들었다.

“힘은 들었지만 천년을 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숭례문으로 복구하고 싶었어요. 여러 장인들이 힘을 합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빨리빨리’ 문화가 남아 있는 문화재 복원 관행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지난해 한겨울임에도 정치적 이유로 연말까지 마치려 했던 당초 완공 계획에는 혀를 찼다. “일본의 경우 작은 건축물 하나 복원하는 데도 10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너무 짧아요. 숭례문도 사실상 공사 작업은 3년 정도였거든요.”

이번에 숭례문 현장에 관리사무소가 설치된 데 대해선 환영을 표하면서 “화재를 관리소홀 탓이 아닌 개방 탓으로 돌리는 건 앞뒤가 바뀐 것”이라며 “문화재는 국민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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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yosohn@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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