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는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분명 배우 김인권의 영화다.
‘해운대’ ‘마이웨이’ ‘퀵‘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영화들에서 개성 넘치는 강렬한 연기로 명품 조연으로 인정받은 그가 주연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확실한 ‘한 수’를 둔 셈이다. 육상효 감독의 영화 ‘방가? 방가!’와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서도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지만,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보다 대중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서며 주연의 위용을 굳히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30일, 홍대의 카페에서 마주한 김인권은 주연, 조연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신 ‘기능적 배우’를 목표로 연기에 매진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주연? ‘기능적 배우’로 남고파
“기능적 배우라는 말은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에요. (박종원)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과거 알 파치노나 말론 브란도처럼 극중 인물과의 내면 일치를 통해 다소 무거운 극사실적 연기를 보여 주는 메소드 배우가 큰 사랑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무거울 땐 한없이 무겁고 가벼울 땐 새털처럼 가벼운 연기를 보일 수 있는 기능적 배우가 호평을 받을 거라고요. 그리고 그 싹을 제게서 보고 계시다며 기능적 배우로 계속 성장해 달라고, 제자들에게 기능적 배우의 표본으로 저를 꼽으며 강의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저야 너무나 영광이죠.”
“물론 주연과 조연은 그 역할에 있어 큰 차이가 있어요. 조연은 연기만 잘하면 되고, 인정받기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하지만 주연에게 있어 연기는 이미 기본인 거죠, 당연히 잘해야 하는 기본. 그 이상, 엔터테이너로서 시청률이나 관객 수에서 흥행 파워를 갖춰야 명실상부한 주연 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자면 저는 한참 더 가야지요.”
트로트 강의 장면은 ‘영화적 개그’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도 때로는 한없이 진지하게, 때로는 한없이 유쾌했다. 영화의 명장면 얘기로 옮아가자 한껏 가벼워진다. 중국음식점 짜짜루 주방장에게 트로트가요 ‘황진이’를 가르쳐 주는 장면이 ‘방가? 방가!’에서 김정태가 노래 ‘찬찬찬’을 강의하는 장면을 연상시켜 인상 깊었다고 전하자, 마치 영화 촬영이 다시 시작된 듯 박봉남이 되어 “밴~딩”을 연발하며 명연기를 재연한다.
“이렇게 허황된 얘기를 아주 열정적으로 연설하듯 말하는 ‘영화적 개그’의 효시를 저는 영화 ‘넘버3’의 송강호 선배님으로 봐요. 임춘애 선수의 마라톤 이야기를, (마치 송강호처럼) ‘어, 라면’ ‘땀, 땀!’ 정말 재미있었잖아요. 김정태 선배의 ‘찬찬찬’ 강의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대선배님들의 훌륭한 연기에 대한 ‘도전’인 거죠. 또 ‘방가? 방가!’에서 제가 욕 강의를 했는데, ‘찬찬찬’에 밀렸단 말이죠. 보고 있나, 김정태? 이런 마음으로 ‘황진이’ 장면을 준비했어요.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에요.”
김인권의 명장면… ‘전국을 뒤집어 놔’ 뮤비
김인권 자신은 다른 장면을 꼽았다. “저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뮤직비디오 장면이 제일 좋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을 거의 다 찍었는데, ‘내가 뭘 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인간적 성장이 없었다면 엔터테이너로서의 성장이라도 있어야 하겠다 싶어서 공을 많이 들여서 임했습니다. ‘전국을 뒤집어 놔’라는 노래 제목처럼 정말로 전 국민께 즐거움 드리고, 전국의 관객으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마음도 담았고요.”
마지막 장면만이 아니다. 김인권은 ‘전국노래자랑’에서 흡사 가수 싸이가 현신한 듯 파워 넘치는 무대 매너와 노래, 춤을 선사한다. 가수가 꿈이었던 거냐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전혀요.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을 매일 듣고 또 들으며 완벽하게 숙지했어요. 춤도 지독한 트레이닝의 결과이고요. 촬영 전부터 춤 연습하고, 이런 과정들을 버텨내야 하니까 체력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노래 연습하고, 영화 찍고 나니까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마치 영화를 찍은 게 아니라 이경규표 대국민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한 느낌이에요(웃음). 이경규표 무한도전에요!”
‘전국노래자랑’ 안에 이경규 있다
무모한 도전과도 같은 이경규식 무한도전을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로 김인권은 ‘전국노래자랑’의 제작자 이경규를 꼽았다.
“사실 봉남이에게서 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대신 이경규 씨가 보이더라고요. 개그맨 이경규가 아닌 영화인 이경규요. 꿈꾸는 방랑자랄까, 어렸을 때부터의 꿈을 잊지도 놓치도 않고 이렇게 끝없이 영화에 도전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그래서 가수가 열망인 봉남이를 영화인이고자 하는 이경규로 생각했더니 연기가 술술 풀렸습니다. 영화 안에 이경규가 있었으면 했어요, 관객 분들께서도 저를 통해 영화인 이경규 씨와 여러분 자신의 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즐거운 작업의 또 다른 비결로 사람 좋은 동료들과 편안했던 촬영장 분위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박봉남의 아내 오미애를 연기한 류현경에게로 얘기가 집중됐다.
“류현경, 한국영화가 품기에는 사이즈가 크다”
“현경 씨는 정말 똑똑하고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이미 영화 연출을 하기도 했었지만 연출력도 대단해요. 영화 말미 전국노래자랑이 끝난 뒤 봉남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어요, 미애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고요. 현경 씨 아이디어예요. 처음엔 얘기 이제 다 끝났고 신나게 뮤직비디오로 넘어가면 되는데, 굳이 왜 이걸 넣자고 할까 했어요. 나중엔 저도 알게 됐죠, 봉남이와 미애의 얘기에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걸요. 영화 보니까 없으면 내러티브나 감정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큰일 날 뻔 했어요(웃음). 잘 내려오지 않던 미애의 미용실 셔터가 스르륵 잘 내려오는 장면도 현경 씨 생각이에요. 셔터처럼 삐걱거리던 부부 관계가 달라졌음을 보여 주죠.”
자기 얘기보다 동료 자랑이 늘어진다. “사실 자기 연기만 잘하면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고민하고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대단하지 않나요? 정말 이번에 도움, 많이 받았어요. 작게는 ‘오빠, 그 스타일 아냐’ 하며 봉남의 의상과 헤어스타일부터 뮤직비디오 스타일링까지 옆에서 챙겨 줬고요. 본질적으로는 봉남에게 비는 드라마와 내러티브를 꽉 채워 줬어요. 정말 훌륭한 인재죠, 한국영화가 품기에는 사이즈가 커서 다루기 쉽진 않지만요(웃음).”
보통 사람들이 전하는 꿈과 사랑 ‘울다가 웃다가’
배우가 기분 좋으면 영화도 즐겁고, 관객의 마음도 흐뭇한 걸까. 지난 1980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32년 6개월 동안 계속돼 온 시청자 참여 노래경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소재로. 출연자들의 사연을 영화화 한 ‘전국노래자랑’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세상살이가 담겼다.
김인권, 류현경이 연기한 철없는 가수지망생 박봉남과 그를 뒷바라지하는 미용사 아내 오미애의 사연이 큰 웃음 속에 우리가 잊고 사는 꿈을 일깨운다면, 원로배우 오현경과 아역배우 김환희 양이 보여 주는 외할아버지와 손녀의 어색한 동거에서 싹튼 애틋한 정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제훈이 군대 간 틈을 타 충무로의 차세대 블루칩으로 급부상 중인 유연석과 이번 영화를 통해 조정석·한예리를 잇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평가받는 이초희 커플이 앙상블을 이룬 풋풋한 사랑은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김해 시장이 된 김수미, 승진 못해도 항상 웃음으로 시장을 보필하는 맹 과장이 된 오광록의 조합은 예상 밖의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그 누구의 사연이 아닌 내 얘기처럼 다가오는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보통 사람들의 응원 속에 개봉 5일 만에 관객 45만 명을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이 아닌 ‘아이언 맨’의 흥행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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