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봉태규, 그가 돌아왔다…2년 6개월 공백으로 얻은 것

[쿠키人터뷰] 봉태규, 그가 돌아왔다…2년 6개월 공백으로 얻은 것

기사승인 2013-05-28 11:09:00


[인터뷰] 봉태규가 돌아왔다. ‘미나 문방구’를 통해 녹슬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초등학생 ‘왕따’에서 가슴 따뜻하고 노는 재미를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성장한 최강호로 돌아왔다.

영화 ‘청춘 그루브’(2010)가 있었고, 드라마 스페셜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2012)도 좋았지만 마치 영화 ‘가루지기’(2008) 이후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느낌이다. 연기 활동을 멈춘 시간, 2년 6개월. 연기에 공백이 있었던 것이지 인생에 공백이란 없다. 지난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봉태규에게서는 공백으로 얻은 게 무엇인지가 계속 전해져 왔다.

“현실에 두 발을 착 내려앉으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 결과에 집착했었고 현실을 즐기지 못했어요. 알지 못하는 내일을 위해 사는 느낌이랄까요. 모든 게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배우로서 도드라지지 않았을 때 이 일이 나한테 이렇게 소중한 거구나,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하고 싶다고 쉽게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스스로 돌아볼 때 왜 그랬을까 싶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너무 빨리 잘됐어요. 저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고 신인의 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빨랐고 그래서 공중에 붕 떠 있었어요. 저에 대한 평가에는 얼마나 병적으로 집착했는지 몰라요. 어떤 기자가 어떻게 평했나, 내 영화 내 연기에 대해 뭐라고 썼나 기사 하나 하나를 다 찾아봤어요. 사실 저를 안 좋게 볼 수도 있는 건데 힘들어했죠.”

다시 달라진 봉태규.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못한다는 평가가 주어진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게 됐다 할까요. 상처를 안 받게 됐다는 것도 아니고 자양분으로 삼을 만큼 쿨(cool) 해 졌다는 것도 아니에요(웃음). 적어도 나를 위해, 나 잘하자고 주변사람 불편하게 하지는 말자는 거죠. 캐릭터 만들어 보고 분석해 보겠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모든 상황에 솔직하게 임하자고 맘을 먹게 된 거네요.”

안 그래도 환한 봉태규의 웃음이 더욱 밝아진다. 마음속으로 무척 좋은 일이나 사람을 떠올릴 때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다. 깨알 자랑에 앞선 수줍음과 그를 행복하게 했던 ‘그것’이 다시 한 번 불러온 만족감이 빚어낸 웃음이었다.

“이번에 스태프의 편지를 받았어요(뿌듯). 내용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러저러한 점이 좋았다, 고마웠다는 마음이 담긴 편지였어요. 다른 무엇보다 이 편지가 저에게는 ‘미나 문방구’ 최고의 성과네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도 수개월 간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스태프로부터 받는 인정. 삶과 연기의 태도를 바꿔 임한 첫 번째 작품에서 받은 칭찬이었으니 큰 선물일 법하다. 칭찬은 봉태규도 춤추게 한다.

명색이 복귀 작인데, 조금 더 큰 배역을 욕심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백기가 길었잖아요. 처음부터 선두에 서는 게 솔직히 부담됐어요. 배역도 쉬는 동안 새로이 하고 싶어진 게 아니라 원래 하던 것, 몸에 배어 있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싶었고요. 더 안전하고 덜 불안한 선택을 원한 거죠. (‘미나 문방구’는) 선두에 서지 않아도 되는 영화라 좋았어요. 동시에 선두가 누구냐도 중요하잖아요. 최강희, 거절할 이유 없는 배우잖아요. 강희 누나를 받쳐 줘야 하는 역할, 그래서 좋았어요.”

“그렇게 때로는 누나 뒤에서, 곁에서 연기하니 너무 편했어요. 현장에서야 누나가 해야 할 주연으로서의 역할들을 조금은 눈치껏 나눠서 할 수 있지만, 연기 안에서는 아니잖아요. 오롯이 미나가 영화를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 하니까, 누나에게 굉장히 고맙고 또 미안했습니다.”

몸에 배어 있는 데이터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 싶었다. 결국 그것은 배우 봉태규가 가장 잘하는 연기 지점이고, 감독들이 봉태규라는 배우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앞으로는 또 다른 데이터가 추가되고 새로운 이유가 생기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임상수 감독님의 말을 빌자면, 재미있는 캐릭터를 천박하지 않게 연기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어떤 평론가 분이 쓰신 글을 인용하자면 ‘연출가들이 봉태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기(감독)를 투영하기가 쉬워서 일 것이다’라고도 하고요. 제가 생각해 본 이유는 관객 분들 보시기에 부담이 없어서, 유달리 편해하시는 게 아닌가 싶고요.”

봉태규는 감독의 자기 투영에 대해 겸손한 해석을 내놨다. “글 쓰시고 영화 좋아하고 연출 잘하시는 분들의 어린 시절, 혹은 감성이 메이저(major)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이 많고 주변을 둘러보는 걸 즐기고 상상하기 좋아하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투영하기에 제가 편하신 거죠. 그리고 감독님들 중에 그렇게 크고 잘생긴 그런 분들 많지 않아요(웃음).”

비단 감독만이 아니다. 봉태규는 보통 사람들의 애환과 개성을 색칠하기에 좋은 배우다. 극중에서 봉태규가 겪는 일은 마치 내 일과도 같이 느껴지기 십상이어서, 그가 실패하면 같이 기운이 빠지고 그가 성공하며 함께 웃게 된다.

“루저(loser) 감성을 좋아해요.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요. 잉여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고 동경도 하기에 루저들은 이럴 것이다 하는 ‘막’이 없어요, 선입견이 없어요. 착한 사람들,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입이 되어 있다 보니, 동경과 이해 사이에 끼어 있으니 (루저) 연기를 하면 긍정적 표현이 돼요. 이번 강호 역시 마찬가지고요.”

강호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저는 강호가 어린 시절 ‘왕따’여서 괴로워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밝은 성격의 미나는 문방구 집 딸이라 ‘미나 방구’라고 놀림 당하는 걸 싫어했지만, 강호는 달랐다고 봤어요. 그냥 다방 집 아들이라 친구들이 놀리는구나, 다른 아이는 또 다른 이유로 놀림과 별명이 따르겠구나 생각했을 거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진짜 ‘왕따’는 친구들이 놀아 주지 않으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 전체를 둘러볼 여유가 있거든요. 그런 사색 속에서 괜찮은 어른으로 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따돌림을 당해 보지 않은 교사보다 더 재미있고 따뜻한 선생님으로요.”

다소 엉뚱하고 마음 착한 강호는 매사 분명하고 전투적인 미나 옆에서 영화의 감정을 온화하게 다스린다. 주인공이 두 명의 미나였다면 관객은 그렇게 행복한 미소 속에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추억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봉태규의 힘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 사진=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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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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