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시위 확산… 이슬람주의 VS 세속주의 ‘문화 전쟁’

터키 시위 확산… 이슬람주의 VS 세속주의 ‘문화 전쟁’

기사승인 2013-06-03 19:17:01

‘우리는 이스탄불 거리에서 터키의 봄을 보고 있는가?’

중동 언론 알아라비아는 터키 67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례적 대규모 시위를 전하며 이런 헤드라인을 붙였다.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게지 공원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는 3일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지 4일째를 맞았다. 수도 앙카라 크즐라이 광장에 시위대 1000여명이 운집하고, 공공노동조합연맹도 파업 계획을 밝히면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경찰 과잉 진압으로 수백명이 다치고 2명이 사망했다. 연행자는 1700명가량에 달했다.

이슬람 가치와 서구식 정당 민주주의를 결합한 ‘터키식 모델’을 성공시키며 유럽과 이슬람 국가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터키는 정치적 안정을 누려왔다. 이번 공원 재개발 문제가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데는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과 이슬람주의에 대한 문화적 반감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2003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집권한 뒤 전례 없는 정치적 안정과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했다.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한 에르도안 총리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기 만료를 앞둔 대다수 통치자가 그러하듯 외국인 정책, 헌법, 도시의 스카이라인까지 손봐가며 터키 전역에 자신의 치적 쌓기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여기에 언론 장악, 집권당의 횡포도 시민의 반발을 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시위를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간 ‘문화 전쟁(culture war)’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집권당은 오후 10시~오전 6시 소매점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에 건설한 대교에 오스만 제국 시대의 술탄(군주) 이름을 따라 짓는 등 이슬람 색채를 강화했다. 유럽과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며 관광지로서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터키 시민들이 받아들이기에 힘든 정책이었다.

터키 정부가 재개발하려는 탁심 광장의 상징 또한 시민 분노에 불을 질렀다. 탁심은 젊은이들의 광장이자 ‘이집트 아랍의 봄’이 촉발된 타흐리르 광장에 비견할 만한 민주적 의미를 갖고 있다. 오스만 제국이 끝나고 1923년 터키공화국 시대가 열릴 때 탁심 광장은 세속주의 사고가 발현된 장소였으며, 1977년 40명의 좌파가 ‘5월의 날’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탁심 광장의 나무 600여 그루가 베어지는 자리에 세워질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건축물은 치적 쌓기와 권위주의, 전시행정의 상징인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다. 환경보호론자, 좌파, 민족주의자 등 다양한 이념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선 상황에서도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일축했다. 일부 고위 관리들은 정부와 대립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시위를 터키판 ‘아랍의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알아라비아의 칼럼니스트 케이란 오즈부닥은 ‘터키의 봄’이라고 분석하는 서방 언론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새는 다리가 두 개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다리가 두 개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나도 새처럼 날 수 있다”와 같은 단순 논리라는 설명이다. 독재 정권에 대항한 아랍의 봄과 달리 터키 시민들은 권위주의적 성향의 민주 정부에 불만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의 안정적 경제 성장률 또한 체제 전복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요소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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