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하드윤미의 똥개훈련] #001 하드윤미가 돌아왔다

[친절한 쿡기자 - 하드윤미의 똥개훈련] #001 하드윤미가 돌아왔다

기사승인 2013-06-25 09:00:01


나는 누구일까?

[친절한 쿡기자 - 하드윤미의 똥개훈련] 밤 12시 30분, 잠이 오지 않는 나는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검색창에 ‘프리랜서 기자 채용’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한다. 건당 1만원짜리 보도자료 작성하는 프리랜서 기자 모집기사가 뜬다. 보도자료 작성하는 일이 기자가 하는 일이었나? 하고 갸우뚱하다가 건당 1만원이라는 헐값에 가슴 한구석에 ‘쿵’하고 무언가 내려앉는다.

그건 그래도 왕년에 일간지 기자하던 놈입네 하던 내 자만심일까? 아니면 이걸로 애 간식비 하려면 몇 건을 써야 하는지 헤아려보던 지금의 처지에 대한 열등감일까? 그것도 아니면 프리랜서 기자 채용이라는 검색어 자체를 입력한 나에 대한 연민일까?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이로 알고 있을까? 과거 나의 기사를 읽었던 사람들은 나를 기억이나 할까? 갑자기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처럼 내 몸이 모래가 되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하드한 세상의 소프트 윤미

지금 나는 아줌마다. 전업주부. 무슨 글이든 써보자고 마음을 먹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가끔은 프리랜서 기자라는 말을 써먹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현재 어디에도 고정연재 중인 기사가 없다. 개점휴업 상태인 프리랜서 기자. 그래, 그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예전 일했던 신문사 선배의 소개로 몇 군데 사보나 기관지에 꾸준히 기사를 썼던 적이 있지만, 현역에서 물러난 지 벌써 4년, 내 이름이 잊혀져 가는 속도와 비슷하게 일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아이 키우느라 너무 바빴던 나머지 일 챙길 여유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1년,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탓일까 슬슬 일이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창 코골고 자기에도 부족한 이 시간에 노트북을 밝히고 보잘 것 없는 신세한탄이라도 풀고 있는 거겠지.

다시 인터넷 창을 열고 검색창에 ‘하드윤미’를 검색해봤다. 생각 외로 많은 게시물들이 주르륵 뜬다. 언제 그랬나 싶었던 일들이 거기 담겨있다.

그래, 내가 그랬었지. 내가 하드윤미였지. 어디까지나 과거형인 나의 닉네임 하드윤미. 다시 꺼내기엔 요즘 세상이 너무나 하드코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넷 환경도, 미디어 환경도, 내가 독자적인 ‘하드코어’를 구축할 수 있었던, 그래서 하드윤미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여기저기서 하드한 기사들이 넘쳐나는 시대. 별 시덥지도 않은 이슈들이 매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도 모자라 3년 5년전의 유행들, 심지어 그 시대 만들어진 유치한 놀이들, 게시물 이미지들이 다시 떠돌아다니며 또 다른 기사들을 만들어내는 지금. 하드윤미를 지나치게 소프트하게 만드는 이 세상. 하드한 세상의 소프트 윤미. 이게 요즘의 나와 더 어울리는 닉네임이 아닐까?

“제발 관심 좀”

유난히 잠이 안 오는 밤, 다시 인터넷에 올려진 글들을 훑어본다.

“하드윤미 은퇴한 것 같은데 요즘 뭐하나요?”

가깝게는 약 1년 전에 씌어진 비슷한 글도 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내가 문득 나타난다면 나를 반가워할 사람도 있을까? 사실 세상에 나타나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너도나도 트위터를 시작하던 그 시절. 친구들에게서 ‘너 트위터 안해?’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던 시절,

왜 아니니 나도 트위터를 만든 적이 있었단다. 트위터 계정 이름이 무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였다고 하면 많이 웃기려나?

트위터 개설하고 나서 바로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aka. 유식대장)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나름 회사 돌아가는 사정도 잘 알고 특히나 유식대장이 자기 자식처럼 일군 회사를 헐값이 팔아넘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트윗을 작성했다.

지금 회사를 넘겨받은 사람은 예전부터 부사장으로 일했던 분이고 그것이 디시의 완전한 몰락이 아니라는 트윗이었다. 나름 관심을 받을 줄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뭐 그냥 그런 트윗이 있는 줄도 모르는 완전한 무관심의 상태였지. 단 하나의 트윗으로 나는 상처를 받고 개설한지 5분만에 트윗을 버렸다. 지금까지 그 트윗이 살아있는 지는 모르나, 로그인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생각나지 않으니 다시 찾아보지 않기로 하자. 여튼 이렇게 ‘이제는 말하고 싶었던’ 나는 또 한번의 좌절 이후 완전히 재야에 묻히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하드코어’는 우리 나름의 삶이다

요즘의 나는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유치원에 가 있는 잠시의 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나 엄마의 손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죽어라 해도 티가 안 나지만 하루만 안 하면 금세 눈에 띄는 집안일과 언제나 사투 중이며 아내 노릇, 딸 노릇, 며느리 노릇, 시누이 노릇, 동서 노릇, 올케 노릇, 친구 노릇, 선배 노릇, 후배 노릇,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주연, 조연 때로는 엑스트라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매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왠지 나처럼 밤이 외로운(?) 아줌마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세상에 내놓을 한 권의 책을 쓴다면 그건 바로 아줌마들의 힐링을 위한 자기개발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떨까,

왕년에 내가 인터넷을 주름잡던 시기의 이야기들! ‘무슨무슨녀’의 시초였던 ‘개똥녀’ 사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나에게 특종의 영예를 안겨줬던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그리고 그 시절의 인터넷 스타들, 취재 뒷이야기들, 와방큐트 영숙씨와 상기훃아에 얽힌 수 많은 비화들. 그리고 요즘의 인터넷 뉴스 이야기, 기사라 하기도 낯 뜨거울 정도의 연예인 트위터 소식, 공항패션, 갑남을녀가 화장실 간 이야기까지도 기사가 되는 이 상황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폭로. 상상의 가지가 뻗어갈 즈음 마침 평소 간간이 연락하고 지내던 국민일보의 김상기 기자(aka. 상기훃아)와 만나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내 계획을 듣고 김상기 선배는 “마침 쿠키뉴스의 ‘친절한 쿡기자’에서 찾던 이야기들이야. 연재해 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지만, 내 귀에는 “그래, 그렇다면 쿠키뉴스가 멍석을 깔아주지. 나와 한번 붙어보는 게 어때?”로 들렸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왠지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나의 하드코어 DNA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내가 세상에 다시 등장할 때인가?

자네 도전을 받아들이지. 내가 바로 ‘하드윤미’다

하드윤미가 돌아왔다.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과거의 것인 동시에 현재의 것이기도 하다. 드넓은 세상의 것이며 작은 동네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2000년대 중반을 보냈던 사람들에겐 과거에 대한 향수일 수 있고,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너희들이 아무 생각 없이 향유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가 어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최초의 리포트가 될 것이다. 아저씨들에겐 아내에게 왜 잘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고, 아줌마들에겐 왜 당당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심장이 쫄깃해지는 ‘하드코어’를 보여주겠다. 다시 말 하는데, ‘하드윤미가 돌아왔다’.

김윤미 pooopdog@naver.com

김윤미

2000년대 중반 인터넷 뉴스 태동기에 디시인사이드 디시뉴스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인터넷 이슈와 세계 토픽 등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하드코어 윤미’ 줄여서 ‘하드윤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 반복되는 똥개훈련에 지쳐 퇴사했다. 현재는 자유기고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뉴스룸 트위터, 친절한 쿡기자 ☞ twitter.com/@kukinewsroom

김상기 기자
pooopdog@naver.com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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