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중소기업 A사의 사장은 제품을 납품하는 대기업 B사의 인사이동이 두렵다. 구매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단가 인하 압력이 들어와서다. 올해 새로 부임한 구매담당자도 수시로 5%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원가절감 목표 달성을 이유로 대지만 실상은 본인 실적을 위한 것임을 A사장은 그간의 경험으로 안다.
중소기업 C사는 최근 D대기업의 경쟁입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른 업체가 낸 최저가 정보를 알게 됐다. 다름 아닌 D기업에서 넌지시 상대 업체의 가격을 알려줬다. 낙찰을 받는데 성공했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D기업은 낙찰가보다 더 낮은 하도급 대금을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이런 사례를 담은 ‘부당 납품단가 인하행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5월 초부터 최근까지 대기업 74곳과 공기업 21곳의 협력 중소기업 6430곳을 대상으로 서면 및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서면 조사에 응답한 기업 5167곳 가운데 359곳(6.9%)이 부당 납품단가 인하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복수응답에 따른 유형별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정기적·일률적 단가 인하’가 204건(56.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쟁입찰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대금결제’(102건·28.4%),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협조해달라며 감액’(90건·25.1%), ‘생산성 향상, 공정 개선 등을 이유로 감액’(79건·22%) 순이었다.
부당 납품단가 인하 경험이 있는 359곳 가운데 71.3%가 최근 1년간 1차례 납품단가 인하를 겪었다고 했으나 2차례 이상과 3차례 이상도 각각 15.6%와 6.4%였다. 4차례 이상 단가인하를 당했다는 비율도 6.7%나 됐다. 단가 인하율은 5% 이하가 74.9%로 대부분이었으나, 10% 이하도 25.1%나 됐다.
업종별로는 통신(12.0%) 업종의 단가 후려치기가 가장 심했고 정보(10.2%), 전기·전자(9.8%), 기계(8.8%) 순으로 나타났다.
실태는 서면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실렸다. 산업부가 중소기업 902곳에 현장 조사를 나갔을 때는 23.9%(216곳)가 부당 납품단가 인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 응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보복이 두렵다며 철저한 보안을 부탁했다.
산업부는 기업별 조사결과를 장관 친서 형태로 해당 기업에 통보하고 내년 동반성장 지수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또 불공정거래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 등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