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29만원’의 그 사람과 ’너목’의 서대석 판사

[친절한 쿡기자] ‘29만원’의 그 사람과 ’너목’의 서대석 판사

기사승인 2013-07-30 20:35:01


[친절한 쿡기자] 진정한 사과,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받아내고 싶은 것이 됩니다.

이번 주 마지막 2회 방송을 앞둔 SBS 인기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도 사과를 받아내고 싶은 사람이 나옵니다. 황달중, 그는 26년 전 잘못된 판결로 ‘아내 살인죄’를 덮어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생의 절반이자 가장 빛나는 시절을 어린 딸과 떨어져 감옥에서 지낸 것이죠. 그가 죽였다던 부인은 사실 멀쩡히 살아 있었고요. 수감 중 뇌종양이 발견된 그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26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납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황달중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법부의 진심 어린 사과죠. 그러나 판결을 내렸던 서대석 판사는 사과하지 않습니다. 이미 26년 전 판결 직후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모른 체했습니다.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이제 모든 사람이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사과를 해야 할 당사자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고도 끝내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의 아내마저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라며 등을 돌리며 떠났는데도 말이죠.

하정우 주연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사과를 받기 위해 극단적인 테러까지 감행합니다. 아슬아슬한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범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테러범은 2년 전 마포대교 공사 중 인부 세 명이 어이없는 사고로 사망했으나 이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사과는 기대하기 힘들죠. 드라마, 영화, 현실 어디에서도 사과는 더디고,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우리 현대사에도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1인이죠.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황달중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기간이 26년인 것은 우연일까요? 지난해 나온 한 한국영화의 제목도 ‘26년’이었는데 말이죠.

그는 수많은 이의 삶을 짓밟아 놓고도, 역사에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고요. 검찰은 최근 그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환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비자금은 정국 안정을 바라는 기업들이 우국충정과 같은 사명감으로 돈을 낸 것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전 재산은 ‘29만원’밖에 없다고 발뺌하던 그입니다.

검찰은 그의 지난 20년에 걸친 전 계좌를 추적하고, 아들들의 회사 압수수색과 미술품 압류까지 전방위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숨겨진 재산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마음을 아프게 한 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입니다.

재산 추적을 위해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후에도 그는 태연히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마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서 판사처럼. 모두가 등을 돌린 와중에도 혼자 식사를 하다 억울하다며, 분개해 유리컵을 던지며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외친 서 판사처럼 말이죠. 그는 그로 인해 가슴이 찢어졌던 많은 이들에 대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사과 받아야 할 사람들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화생활부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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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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