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었다, 붙였다’…産銀-정책금융공사 두고 ‘쇼’하는 정부

‘떼었다, 붙였다’…産銀-정책금융공사 두고 ‘쇼’하는 정부

기사승인 2013-08-28 01:51:00

정부가 정책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전임 정부 시절 분리했던 한국산업은행(산은)과 한국정책금융공사(정금공)를 4년 만에 재통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금융 시스템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정책 신뢰도와 일관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책 실패에 대한 금융 당국의 책임론도 커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2009년 분리된 산은과 정금공을 다시 합치고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만든 산은금융지주를 해체하는 내용의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27일 발표했다.

통합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 회사채 인수, 투자형 정책금융 등 대내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하고 정금공의 투자 업무는 산은 내 정책금융본부가 맡는다. 정금공의 해외 자산 2조원은 수출입은행, 직접 대출 자산은 산은에 이관된다.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산은 민영화를 중단키로 한데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장 여건 악화로 2008년 민영화 결정 때보다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 안전판, 기업 구조조정 등 정책금융 기능 강화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능 재편을 하지 않으면 정책금융기관 간 불필요한 중복으로 국가적 손실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주장은 분리 당시의 상황과 논리를 고려하면 궤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로 시장 여건이 악화됐음에도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9년 4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주역들이 바로 현 경제관료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합을 위한 논리로 내세운 정책금융 강화는 4년 전 양 기관 분리를 위해 내놓은 논리와 판박이처럼 유사하다. 당시는 산은 민영화를 통해 시장과의 금융 마찰을 해소하고 정금공을 별도로 설립해 정책금융기관으로 육성, 중복 부분을 없애겠다고 했다.

홍익대 전성인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결정은 정부가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과 연속성을 훼손했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설익은 정책이 국가경제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4년 만에 원점…정책 실패 자인한 셈

“시장에서 정부 비중을 축소하고 건전한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코자 합니다. 이것이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한국산업은행(산은) 및 기타 금융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산은을 우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킨 후 한국 내 선도 투자은행으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2008년 4월·전광우 당시 금융위원장)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는 정책금융기관의 역할 재정립에 대해 관계 부처, 각계 전문가와 수개월간 집중 토론했습니다. 산은 민영화를 중단하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시장여건 악화로 2008년 민영화를 결정할 때보다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입니다.”(2013년 8월·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

MB정부의 핵심 공약이던 산은 민영화는 박근혜정부 출범 첫해 백지화됐다. 산은과 한국정책금융공사(정금공)를 다시 합치는 명분은 4년 전 정부가 산은·정금공을 분리할 때 내세웠던 명분과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는 27일 “정금공이 산은과 대부분 유사한 업무를 수행해 기능재편을 하지 않을 경우 국가적 손실이 커진다”고 밝혔다. 4년 전에는 “정책금융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했었다.

정권이 바뀐 뒤 정부가 정책 실패를 시인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계적 상업·투자은행(CIB)을 만들겠다”며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KDB금융지주 회장에 임명하는 등 산은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산은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할 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영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비난 여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잃어버린 4년’에 대한 비판이 크다. 민영화 추진·무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쓰였고, 정금공을 괜히 분리했다 통합하는 바람에 인력 구조조정만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 따르면 산은은 민영화 추진 비용으로 최소 706억원을 썼다. 정책금융공사 운영에 따른 인건비·전산개발비 등 1820억원을 더하면 2520억여원이 공중분해됐다.

산은과 정금공이 분리된 2009년 10월과 비교해 지난달 말 현재 산은과 정금공, 산은지주의 인력은 790여명 늘어난 상태다. 고 사무처장은 “인력 구조조정은 최소화하고 안정적 통합 정착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금공 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은 명분도 논리도 없는, 한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졸속 개편안”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던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무산된 것도 논란을 낳을 전망이다. 금융위는 이날 선박금융공사 설립 대신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산은 등의 일부 선박금융 관련 조직·인력을 부산으로 이전, ‘해양금융 종합센터’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즉각 성명을 내고 “선박금융공사 설립 백지화는 해양수산부의 부산유치 무산에 이어 박 대통령의 부산지역 핵심 대선공약이 또다시 파기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고세욱 이경원 기자 swkoh@kmib.co.kr, neosarim@kmib.co.kr
김현섭 기자
swkoh@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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