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SBS '짝' 인터넷 기사를 본 기자가 기자에게

[전정희의 스몰토크] SBS '짝' 인터넷 기사를 본 기자가 기자에게

기사승인 2013-08-29 11:15: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28일 저녁 SBS TV ‘짝’이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연상-연하 커플의 알콩달콩한 연애가 흥미를 끌었습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누구에게 프러포즈를 해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2.

이날 ‘짝’ 내용이 29일 아침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포털 뉴스를 봤더니 ‘기자’들이 생중계 했더군요. 검색어로 넣어보니 어마어마하게 양이 많습니다. 참 잘 받아썼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TV를 보면서 실시간 써서 속보로 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까요. 우리 신문사도 그러하니 사실 이 글 쓴다는 자체가 쑥스럽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요. 하지만 ‘스몰토크’는 한 기자의 칼럼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8일자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신문은 끝났다?’라는 내용에 보면 ‘(기자들이) 사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받아쓰는 행태가 신뢰를 저버린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짝’을 두고도 기자들이 참 잘도 받아썼더군요. ‘거짓’을 받아쓰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권석천 칼럼의 요지는 ‘언론의 공신력이 낮아진 데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짝’과 같은 기사가 인터넷 뉴스로 도배를 합니다.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이죠. 이러한 현실은 기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압니다. 그럼에도 그 책임은 ‘기자’에게 있습니다.

종이신문과 메이저 방송이 갑질(?)하던 시대가 지났습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매체가 뉴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갑질 매체가 독점하던 계몽성 기사는 많이 사그라졌어요. 저 또한 많은 세월을 종이신문 기자로 살아와서 독자에 대한 우월적 지위에서 기사를 썼던 것 같습니다. 소통 없이 가르치려고만 든 거죠.


그 전에 언론이야 정보 독점을 통해 시민을 계몽했으니까요. 인터넷 ‘댓글’은 그런 의미에서 참 의미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4.

이 상황 즉 ‘짝’류 기사 양산을 ‘뉴미디어 시대’로 정리 합시다. 그런데 그 뉴미디시대의 기자들이 생산하는 뉴스를 보면 ‘계몽주의 언론’ 보다 못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모든 게 재미 위주로 기사를 씁니다. 재미없는 건 어렵고 기자 자신도 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둘째, ‘짝’류를 실시간 ‘속보’를 날리는데 그 속보 뉴스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셋째, 그 속보 뉴스 기사에 기자의 고유성과 비평적 시각 등을 담은 단어 하나 찾기 힘듭니다.

넷째, ‘짝’류 속보를 쏟아내는 기자들과 연예뉴스에 발 빠른 네티즌과 차이가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기자와 독자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요? 단지 그런 뉴스에 목매는 기자가 네티즌에 앞서는 점은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것 밖에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다섯째, 그들이 쓴 기사에서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독자가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썼다면 기자의 글쓰기 수준에 문제가 있어요.

여섯째, 그들의 기사엔 ‘비평’이 없습니다. 비평이야말로 기자의 기자됨을 알 수 있는 덕목일 텐데요. 비평을 쓰지 않으려면 왜 기자를 할까요? 우리나라는 2만여 개의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요.

일곱째, 비평이 없다보니 그 기사가 ‘홍보문’인지 ‘기사’인지 알 수 없어요.

여덟째, 남의 글을 읽는 것은 소비자인 내가 그 글에 흥미와 관심 사항이 담겨 있어 읽습니다. 한데 ‘짝’류 기사 수준의 글은 굳이 기자가 아닌 소비자 즉, 네티즌이 써도 쓰겠어요. 글 쓰는 기자의 ‘공부’가 드러나 있지 않다는 거죠. 타인의 글을 읽을 때 독자의 기본적인 마음은 ‘이 글을 읽으면 뭔가 하나 얻을 게 있다’는 ‘텍스트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문장력의 힘을 느끼고 싶죠.

아홉째, ‘짝’류 기사는 독자를 이끌지 못하고 독자에 끌려 다녀요. 예를 들어 네티즌은 200자 원고지 1~3매가 넘어가면 읽기를 포기한다는 경험칙에 맞춰 독자 뒤따라 다니며 정리해내기 바쁩니다. ‘독자보다 반발’ 앞서는 기사를 볼 수 없어요.


열 번째, 기자가 실력도 없으면서도 독자를 우습게 봐요. 기자의 실력은 문장에 담긴 내용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글, 심층적 탐사보도 등은 독자가 어려워 읽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하죠.

열한 번째, ‘짝’류 기자의 글엔 시각이 없어요. 자신이 왜 글 쓰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더 나아가 역사관은 어떠한지 그 글에 드러나지 않아요. 그러니 ‘밥 먹으니 배부르다’는 식의 문장만 나옵니다. 밥 먹으면 당연히 배부르죠. 그건 ‘초딩’도 압니다.

열두 번째, 부당한 것과 싸우려 하지 않아요. 설령 취재원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부당함을 지적하고 알려야죠.

5.

뉴미디어시대 뉴스가 유통되는 과정은 독과점과 자본논리가 먹힙니다.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이 물 밑의 강자죠.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나요? 미디어시장의 빅뱅은 미디어경영자들이 잘 해결해 나갈 겁니다.

기자는 기자답게 글을 써야 합니다. 부당함과 싸우려는 원칙을 가지고 자신의 글에 ‘호흡’을 불어 넣으려 애쓰셔야 합니다. 그 ‘호흡’을 위해 기자하는 겁니다.

선배 기자의 잔소리인가요? 참고로 ‘신문은 끝났다?’ 글을 이미지로 올려놓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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